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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리보러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예습이 닮은 남자를 봤다. 키야 예습이보다 컸지만 인상이 비슷한 데가 있었다. 팬심 소강기인 이 마당에도 닮은 놈만 봐도 가슴이 뛰다니 한창 불탈 때 실제 예습이를 지하철 안에서 봤다면 나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겠다. 예습아, 너 베를린 언제 올거냐? 내가 너한테 완전히 정 떨어져서 네가 울 학교 강당에서 공연을 한다 해도 강당 찾아가기 귀찮아서 안 보러 갈 때 쯤이면 올래?
차마 대놓고는 못쳐다보고 흘끔흘끔 그 닮은 남자를 훔쳐봤다. 유사품이라 해도 보니까 기분은 좋더라.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의 다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변태의 기분을 이해할 것 같았다.(…) 2. 실제로 무대에서 본 엘리자베트는 뮤지컬 중에도 이런 게 있나 싶을 정도로 무척 음울하고 무서운 작품이었다. 일부는 작품 자체의 특성이고 일부는 해리 쿠퍼의 연출에 의한 것일 테고 일부는 순회 공연의 특성상 간소해질 수 밖에 없는 배경과 소품 탓이었다. 3. 제작은 엘리자베트 독일 판권을 가진 스테이트 엔터테인먼트가 했되 연출은 빈 판의 해리 쿠퍼가 담당했다보니 의상은 독일 공연들 것을 많이 재활용했되 배우들의 연기와 그밖의 요소들은 빈 판을 따라간다. 루돌프의 의상은 에쎈과 슈투트가르트의 루돌프들이 그랬듯 파란 웃도리 체육복 바지인데 빈의 루돌프처럼 죽음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엎드리는 동작으로 그림자 송을 시작하는 식이다. 전반적으로 에쎈 의상으로 빈 공연을 하는 분위기다. 곡 순서도 당연히 빈 판을 따른다. 대관식 장면에서 에옌이 들어갔고(아싸~) 정신병원 장면은 꼬맹이 루돌프의 엄마 어디있어요 바로 다음에 오며 루돌프의 음모 꾸미기는 생략되었다. 4. 순회 공연임을 감안해도 배경이 상당히 썰렁하다. 이거 정말 황실 배경 뮤지컬 맞아 싶을 정도다. 엔간한 배경은 그냥 무대 뒤에 영사 처리한다. 영사기만 있으면 지하철 역에서도 공연할 수 있을 거 같다. 보다보면 내가 지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보는 중인가 싶다. 그런데 의상은 또 삐까뻔쩍 사실적이다보니 의상이 연출 방식이나 작품 성격과는 따로 노는 감이 있다. 예를 들어 바트 이슐 장면에서 영사기는 진짜 바트 이슐이 아니라 바트 이슐이 찍힌 관광 엽서 사진들이 포개지는 걸 보여주면서 거리 두기를 시도하는데 인물들은 사실적으로 재현된 의상을 입고 있으면 어색하거든. 이런 스타일의 연출이라면 인물들의 의상도 상징적으로 미니멀하게 처리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5. 베를린 판만의 의상 특징을 들자면 죽음은 검은 옷과 흰 옷을 번갈아가며 입고 나온다. 앙상블들은 처음 좀비춤이나 결혼식, 그림자 송 등 죽음의 영향력이 짙은 장면에서는 수의같은 흰 천을 뒤집어쓴다. 이 흰 천 덕택에 병적이고 음산한 분위기가 더 산다. 6. 베를린 판에서는 꼬마 루돌프가 엄마 어디있어요를 부른 후 죽음의 품에서도 도망을 친다. 성인 루돌프는 자살 후 관에 곱게 담겨지는 게 아니라 죽음의 천사들에 의해 질질 끌려나간다. 봤던 중 제일 불쌍하게 죽는 루돌프였다. 씨씨가 죽음에게 키스 받은 후 공주님 안기로 모셔지는 게 아니라 죽음이 그냥 휙 내려놓을 것임은 해리 쿠퍼의 연출이기에 예상했지만 베를린 판에서는 씨씨의 시신 역시 그냥 회전무대로 치워질 뿐 죽음의 천사들이 모셔가지도 않는다. 시위대들의 증오(Hass) 장면은 연출상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으나 상연 장소가 베를린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섬뜩함이 배가된다. 제 3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 도시 전체에 하켄크로이츠가 펄럭였고 극장 전체에서 전철로 몇 정거장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제국 의사당이 불탔던 도시다. 여기서 외쳐지는 ‘유태인의 노예!’니 ‘승리 만세!’라는 구호는 종종 자기들은 나치 피해자인 척 하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울리는 거랑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여지껏 엘리 번역 하면서도 전혀 못 느꼈던 오싹함을 베를린 무대에서 증오 장면을 보면서 절감했다. 이건 빈에서보다 베를린에서 훨씬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베를린 판의 으시시함을 배가하는 것은 우베 크뢰거의 죽음 캐릭터다. 해리 쿠퍼가 기본적으로 독일판의 단물을 몽땅 빼놨을 뿐더러 우베는 마테가 아니다. 해리 쿠퍼를 연출로 모시고서도 엘리자베트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죽음을 꿋꿋하게 연기해낸 마테는 정말 난 놈이다.(…) 난 빈 초연판에서 우베 죽음의 광대스러움을 꽤 좋아했지만 불행히도 해리 쿠퍼와 우베는 그 컨셉을 폐기처분한 것 같다. 베를린에서의 우베는 무섭고 강하고 무기질적인 절대자였다. 엘리자베트와의 로맨스는 당연히 약화된다. 마지막 춤이나 이 몸이 춤추실 때 등에서 죽음과 씨씨 사이의 육체적 접촉은 에쎈과 슈투트가르트 때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었고 우베 죽음도 유혹자보다 절대자 분위기가 더 난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연출이 엘리자베트라는 작품의 음울함을 살리는 쪽이다보니 맨 마지막의 갑자기 멀쩡한 사랑 뮤지컬스러운 포옹과 키스가 ‘헤헤, 이거 무서운 뮤지컬 아니라니깐요, 해리와 쿤체는 관객 여러분을 해치지 않아요. 러브, 러브!’하는 알리바이로 보일 뿐이다. 물론 그 알리바이는 매우 설득력이 없다. 차라리 루케니가 씨씨를 찔러버리는 데가 진짜 엔딩 같다. 이 몸이 춤추실 때에서 기억에 남는 건 왜 수영장 동영상에서 죽음이 한 발씩 씨씨를 향해 걸어가고 씨씨는 한 발씩 물러나는 장면 있잖은가, 그게 베를린 판에서는 씨씨가 다가서고 죽음이 물러나는 것으로 역전되었다. 그 뒤 죽음이 두어 발 앞으로 나가면서 리버스가 되긴 하는데 슈투트가르트와 베를린에서 죽음과 씨씨의 관계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7. 씨씨는 피아 마님이 아니라 한국 엘리 팬덤에서 4월 2일의 악몽 커플로 유명한 안네미케였다. 하지만 그녀의 악명은 폐기되어야 한다. 2008 년 4 월 안네미케의 씨씨는 2006 년 4 월 그녀의 씨씨와 엄청난 질적 차이가 있다. 우선은 그녀가 피아 마님의 커버가 되었다는 데서 첫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난 아직 마님 씨씨는 못봤지만 보통 독일어권 뮤지컬계에서 제 1 커버는 메인의 연기를 그대로 따라한다. 제 1 커버의 창의성을 압박하는 처사일 수도 있지만 제 1 커버와 메인 사이에 연륜의 차이가 놓여있을 때는 제 1 커버 역의 젊은 배우에게 큰 배움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선배 연기자가 무수한 무대 경험과 인생 경험을 통해 구축해놓은 걸 고스란히 받아먹을 수 있는 기회거든. 안네미케의 연기를 보면서 ‘이건 피아 마님 냄새가 난다, 마님 식 씨씨야’라고 느껴지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기본틀은 피아 마님이 만들어놓은 것이라 해도 거기에 관객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불어넣은 건 안네미케의 몫일 터다. 그녀의 나는 나만의 것은 내가 현장에서 들었기 때문에 더 생생한 인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고서도 내가 들어본 중에서 가장 훌륭한 나만의 것 버전 중 하나였다. 전반적으로 그녀의 젊은 씨씨 연기는 상당히 좋았고(그녀가 어설픈 데가 남아있는 게 오히려 강점이었다. 나는 나만의 것은 어설픈 씨씨가 어설퍼지지 않겠다고 부르는 노래니까) 나이먹은 후의 연기는 퀄리티가 좀 떨어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커버로서는 훌륭한 씨씨였고 안네미케는 관객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배우였다. 아무래도 슈투트가르트 커버들이 아니라 2006 년 4 월 2 일이라는 특정한 날짜에 저주가 걸려있었나보다. 4 월 말에는 멀쩡했던 로리 루돌프도 4 월 2 일에는 맛이 가 있었다. 어쩌면 칼도 사실은 괜찮은 죽음일지 모르겠다.(…) 베를린에 엘리 보러 오시는 분들 혹시 안네미케 걸리더라도 너무 좌절 마시길 바람. 아마 피아 마님 씨씨도 연기 방향은 안네미케랑 비슷하실 것임. 8. 우베는 드라큘라 때보다 더 목이 맛이 간 것 같다. 죽음의 첫 등장 장면 때 상당히 상태가 안좋아서 그 뒤가 걱정될 정도였다. 다행히도 그 뒷장면들에서는 나아졌고(아마 우마왕도 이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씨씨랑 아빠가 Wie du 부르는 동안 극장 뒤 주차장에서 소리지르다 왔나보다) 여전히 파워로는 모든 다른 배역들을 관광보내는 우마왕이었지만 파워말고 달달함으로도 다른 모든 배역들을 관광보내던 삼총사 때의 우마왕이 그리웠다. 전반적으로 이 날 우베는 들으면 ‘와, 성량 좋고 힘있네’라는 감탄은 날지언정 ‘와, 목소리 좋다’라는 감탄은 나지 않았다. 베를린 죽음도 아예 연애를 안하는 건 아니라서 프란츠의 여보 문 열어줘 후 씨씨 꼬실 때는 달달한 소리를 낸다. 근데 이 때 우마왕이 흰 옷 입고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나타나 그런 소리를 내는 바람에 느끼해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우마왕을 세 번째로 무대에서 보고 드디어 인식하게 된 건데 우베가 진짜 머리가 크긴 크다. 내 자리가 3층 발코니 제일 싼 자리였는데 출연진들 중 우베 얼굴이 제일 잘 보였다.(…) 혼자 비율이 다르더라. 근데 드라큘라 때는 우베랑 예습이랑 둘이서 출연진들 키 평균을 깎아먹는 건 알아봤을 망정 딱히 우베 머리 크다는 인상은 못 받았고 베를린 엘리에 와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 보면 평균적으로 베를린 엘리의 다른 모든 출연진들이 머리가 작은 건지도. 우마왕이 정말로 스타구나 싶었던 건 프롤로그에서 우마왕이 아직 노래 시작도 안했는데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았을 때. 커튼 콜 때도 확연히 관객들 반응이 달랐다. 우마왕 알아보고 박수치는 거 보면 관객들 중 엘리 오덕들이 좀 분포했을 거 같은데 1막 막판 초상화 코스프레 장면에서는 박수가 약해서 의외였다. 베를린 판만의 특별한 무대 장치를 들자면 위의 느끼한 장면에서 죽음이 타고 나타난 잎사귀 모양 보트를 들 수 있다. 루돌프와 죽음의 장면에서는 그게 침대 대용으로 쓰인다. 9. 우베와 안네미케는 원래 알던 배우였고 베를린 판에서 특별히 건진 건 프란츠 요제프. 내가 프란츠 요제프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찌질한가’인데 일단 찌질도에서 합격점을 얻었고 배우가 제법 연기가 되는 사람이라서 딱히 프란츠 요제프의 성격에 특별한 해석을 덧붙이지 않고도(사실 프란츠 요제프는 별로 배우의 해석 변주가 들어갈 여지가 없는 캐릭터기도 하다) 기본기만으로도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살려낸다. 만점 남편이나 성군형 프란츠 요제프는 아니고 찌질형 프란츠 요제프인데 앙드레 바우어만큼 찌질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앙드레 바우어가 가부장형 찌질이라면 이 프란츠 요제프는 좀 여린 편이라고 할까. 여보 문열어줘 장면에서 이 프란츠 요제프는 씨씨에게서 도피처, 매달릴 곳을 찾는다는 인상이 짙다. 전반적으로 프란츠 요제프의 약한 면모를 잘 드러내면서 또 약하지만은 않아서 마음에 드는 프란츠 요제프였다. 게다가 배우로서 자기를 죽여야하는 부분도 잘 안다. 초반 집무실 장면이나 선보는 장면처럼 꼭둑각시 연기를 해야할 때는 적당히 무개성하게 꼭둑각시 노릇을 하다가(그래서 초반부에는 이 프란츠 요제프가 그저 그렇다고 여겼음) 여보 문열어줘에서부터 캐릭터를 사람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10. 루케니인 브루노 그라시니는 별 느낌이 없었다. 예전 공연에 비해 그라시니의 연기 디테일이 살짝 달라진 건 귀에 뜨였으나(이를테면 집무실 장면에서 프란츠 요제프를 소개하면서 마치 프란츠 요제프가 별 것 아닌 인물이라는 듯이 ‘아, 걔 이름이 뭐였더라?’하는 식으로 뜸을 들인다든가) 내가 루케니에 별 관심이 없다보니 그 변화들에서 별다른 결론은 못이끌어내겠다. 내가 그라시니를 들으면서 얻은 단 하나의 소감은 ‘얜 바리톤이라도 폰 크로록은 안 어울리겠군’ 뿐이었다. 11. 베를린의 성인 루돌프는 별 거 없다. 일단 혁명 황제는 아니고 연약과에 더 가까운데 그게 연기 덕이라기보다는 배우 자체의 목소리가 가늘고 약한 편이라서 주는 인상이 크고 연약형 루돌프의 거성 루카스의 섬세함에는 못 미친다. 혁명 황제형 루돌프에는 이미 마틴이 거성으로 자리하고 있으니 애당초 뭘로 나가든 경쟁력이 없는 루돌프긴 했다. 딱히 노래가 특출난 것도 아니고 연기는 심심하고 해서 그림자 송에서 실망한 후 그래도 내가 루돌프를 판단하는 기준은 거울송이니 그것까지 들어보고 판단하자 했다가 거울송에서 베를린 루돌프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렸다. 난 엘리에서 다른 모든 출연진이 왓더퍽이더라도 성인 루돌프만 훌륭하면 ‘아, 참으로 감동적인 공연을 봤어’하고 뿌듯해할 수 있는 루돌프 빠인데 하필 베를린에 이런 루돌프가 뽑혔다니 난감하다. 안네미케가 생각보다 잘해서 ‘오오 축복받은 베를린 판 오오 앞으로 자주 와야겠음’하던 기분이 성인 루돌프 등장 후 푸쉬쉬 꺼졌다. 루돌프가 존재감이 약한 덕택에 생긴 그나마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 안그래도 절대자 죽음인 우토트의 귀축강공성이 제대로 살더라는 거다. 참으로 공수의 도가 반듯하게 잡힌 죽음X루돌프였다. 우토트를 상대로도 리버스를 해치운 바 있는 예돌프가 퍽 대단한 신인이긴 했구나 싶었다.(…) 12. 우마왕도 나이 먹고 늙어가나보다. 풍차 돌리기 안하더라. 죽음X루돌프 지지자로서 기대하고 있다가 슬펐다. 그냥 탱고로 만족해야하는 건가. 13. 피아 마님이 안나오셔서일지도 모르겠는데 공연 직전 당일 표를 샀음에도 가장 싼 좌석이 남아있었다. 뱀파이어들의 춤 때는 당일에 제일 싼 좌석 표 구하기는 힘들었는데, 흠. 14. 내가 엘리 오덕이긴 한가보다. 분명 무대에서는 처음 보는 작품인데 이미 몇 번은 본 것처럼 낯설지가 않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옹이 감독 주연한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봤다.
1차 소감: 배우 인생 동안 서부극의 아이콘이나 다름 없이 살아오면서 이스트우드 옹이 내심 로버트 레드포드가 무지 부러우셨던 게지. 아마 레드포드 옹이 이 영화 보고 위협을 느껴 나온 게 호스 위스퍼러지 싶다. 초로의 배우 출신 남성 감독들의 로망은 이런 거였단 말인가. 레드포드 옹이 적지 않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금발을 휘날리신다면 이스트우드 옹은 웃통을 벗어던져 승부하심. 여러 모로 호스 위스퍼러랑 비교가 되었는데 여주인공이 프리마 돈나 노릇 할 자리를 마련해주는데는 이스트우드 옹이 더 나았다. 하긴 메릴 스트립 마님을 모셔놨는데 그래야지. 전반적으로 호스 위스퍼러에 비해 여주인공의 존재감이 더 잘 부각되었심. 굉장히 여주의 감정선이 섬세한 여성 취향의 멜로물을 초로의 액션 배우 출신 남자 감독이 만들어냈다는 게 재미있음. 이거 원작 소설도 아마 남자가 썼지? 이야기를 만든 건 분명히 남자들이고 감독이 직접 연기까지 했건만 로버트는 프란체스카만큼 캐릭터가 잘 구현되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너무 선수삘이 나. -.- 여자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딱딱 잡아서 공략하고 있는데 실제 저런 스킬 가진 남자가 존재한다면 아마 프란체스카랑 불장난 끝나고 얼마 안가 새 여자 낚았을걸. 절대 천연 그대로의 남자란 생물은 저런 스킬 구사못하지. 여자 몇을 거치면서 훈육된거야, 저건. 실제 현실 세계의 보통 남자들은 어떤가하면 프란체스카의 남편처럼 마누라가 울고 있으면 “어, 왜 울어? 무슨 일이야?”하고 묻고는 그녀가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못 깨닫는다구. 2차 소감: 사랑이란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일격이 아니라 본인이 자초하는 인재다. 인연이란 사람이 만드는 거다. 영화 전반부 내내 프란체스카를 보며 “저 아주머니가 정신줄을 완전히 놨구만, 쯧쯧” 싶었다. 길 설명을 못하겠으면 약도 그려 가르쳐주면 그만이지 외간 남자 혼자 모는 트럭은 왜 따라 타고간거유? 그리고 남편도 없는 집에 웬 아이스 티 핑계로 외간 남자를 끌어들인 거유? 그리고 저녁 먹고 가라 붙드는 건 뭔데? 전반부 내내 ‘난 남편으로는 모자라요. 새 남자의 자극이 필요해요’ 아우라를 팍팍 풍겨대는 아주머니를 보며 저 아주머니, 로버트 안만났더라도 조만간 어떤 남자 상대로든 불륜 한 건 저질렀겠군 -_- 싶더라. 저런 타입이 짜증나는 게 뭐냐면 스스로를 속이고 있기 때문에 정말 상대 남자랑 육체 관계 갖기 전까지는 자기가 불륜 중이라는 사실도 인정 안한다는 거. 로버트가 ‘우린 당신 자식들에게 말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저지르지 않았다’ 운운할 때 팍 뿜겼던 게 이봐요, 당신들 감정적으로는 이미 즐길 거 다 즐겼거든요? 키스와 육체 관계 이전에도 이미 둘이서 홍콩을 열 몇 번을 갔다온 주제에 무슨. 차라리 그들이 육체 관계를 맺은 후가 그 전의 정신적 불륜 단계보다 더 보기 편했는데 이유는 ‘명백하게 선을 넘어버렸으니 저들도 이제는 위선을 못 떨겠구나’ 싶어서. 정말이지 차라리 ‘나 남편 속이는 거 맞아. 남편한테 신의 지킬 생각 없어’하고 똑똑히 자각하면서 저지르는 확신범들이 낫지 저렇게 스스로 자초해놓고서도 ‘엄훠나, 난 어쩔 수 없었어’하는 타입들은 무지 재수 없다는. 불륜이 아니더라도 연애는 다 스스로 만들어낸 인연 맞다. 본인이 연애할 마음 없고 사랑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시에는 아무리 대단한 이성이 들이대도 무반응하게 되어있다. 반면 막 연애가 하고 싶고 마음이 열려 있을 때는 예전이라면 거들떠 보지 않았을 이성에게서도 막 장점과 매력이 보이는 법이고.
요새 아랍 시각으로 본 십자군을 읽고 있다. 베이루트에서 출생하여 파리에서 언론인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아랍 출신 기독교인이 쓴 책. 서구 학자들은 언어 장벽으로 접하기 힘든 아랍어 사료들을 바탕으로 일반인 독자 눈높이에 맞춰 ‘이런 이런 일이 있었다’고 사건 위주로 알려주는 대중서인데 쓴 사람이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작가라 그런지 역시 전문 역사학자가 쓴 것보다 재밌다.(…)
서구에서 발간된 기존 십자군 관련 서적들을 읽을 때면 먼 중동까지 기어가 삽질을 연발한 프랑크 군만큼 멍청하게 전쟁을 한 군대도 세상에 또 없지 싶었는데 과연 시각을 바꾸어 아랍인들의 시각에서 보니 천하의 등신은 무슬림들이었다. 이래서 여러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게 중요한가보다. 사례 1: 안티옥 공방전 끝물 무렵의 어느 전투에서 프랑크 인들은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는 무슬림 지원군을 추격하지 않았다. 이유는 ‘진짜 전투는 아직 서로 치뤄보지도 않았고 고로 쟤네가 도망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도망가는 걸 보니 이건 함정이 분명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은 함정 따위는 없었고 무슬림 지원군은 순수하게 싸움이 무서워서 도망간 것 뿐이었다. 사례 2: 전투 민족인 프랑크 인들과 문화 민족인 무슬림들은 뇌 구조가 아예 달랐다. 화성에서 온 프랑크 인, 금성에서 온 무슬림이라 보면 얼추 맞다. 무슬림들이 자기들끼리 분쟁에 바빴다 해도 고향 땅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손해를 보는 건 자신들인지라 가급적 프랑크 인들을 좋게 좋게 달래보려 시도했다. 왜냐면 프랑크 인들이 자신들의 목표는 성지 예루살렘이라고 고래고래 선전을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까지 가는 중간의 시리아 땅의 제후들은 ‘쟤네들 목표는 우리 땅을 먹는 게 아니라 예루살렘이다, 길만 곱게 내주면 쟤네들은 얌전히 예루살렘까지 가겠지’했다. 그리하여 트리폴리스의 제후는 프랑크 인들의 사자들을 초청했다. 평화적인 경유를 위한 조건을 협상하기 위해서였다. 제후는 프랑크 인들이 불필요한 유혈을 피하고 가급적 서로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만드는 길을 선택할만한 고등생물일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트리폴리스의 부유함과 선진국스러움에 입이 딱 벌어진 촌뜨기 프랑크 사자들은 본진으로 돌아가자 ‘저길 치면 엄청난 약탈품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설레발을 쳤다. 프랑크 인들은 즉각 제후의 영지 한 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공격받은 영지 주민들이 투혼을 발휘하여 프랑크 인들은 씨불거리며 물러났다. 닭 쫓던 미친개 모드의 프랑크 인들이 트리폴리스 주변을 지날 때 저 미친 것들이 언제 또 짖으며 달려들지 잔뜩 긴장한 제후는 군량을 바리바리 싸서 프랑크 인들에게 전하며 살살 달래보냈다. 사례 3: 1차 십자군 당시 무슬림들이 쉽게 예루살렘까지 길을 내주고 만 이유 중 하나는 무슬림들 스스로 세력 다툼 때문에 프랑크 인들보다 서로를 더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임은 잘 알려져 있다. 십자군 전쟁의 직접적인 계기는 소아시아에 세력을 확대해가는 셀주크 투르크에 밀린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교황에게 ‘우리가 남이가, (동서방 교회 분리 때문에 실제로는 남 맞음) 와서 여기 이교도들 좀 쓸어다오’하고 SOS를 쳤기 때문인데 정말로 프랑크 지원군이 비잔틴 제국을 돕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집트의 재상은 입이 귀밑에 걸려서 비잔틴 황제에게 ‘굿 잡’이라는 축전을 보냈다. 꼴보기 싫은 순니 파 놈들이 엿먹을 걸 생각하니 시아 파 재상은 너무너무 행복했던 것이다. 그 재상이 죽고도 한참 지나서의 일이지만 예루살렘 왕국이 멸망한 뒤 프랑크 십자군은 타겟을 예루살렘에서 이집트로 바꾼다. 위의 십자군 얘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뜬금 없이 생각난 옛날 일 하나. 부전공하는 과에 제법 엄격한 인상의 노교수가 한 분 계셨다. 지금은 은퇴하고 좀 되셨으니 68 혁명 전에 대학을 다닌 옛 세대 독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젊은 세대 교수들은 대충 넘어가는 규칙도 꼼꼼하게 따지는 분이었는데(그치만 유머 감각은 또 풍부하신 분이셔서 수업은 재밌었심. 그 분이 원칙을 내세워 아직 당신 수업 들을 레벨이 안되었던 나를 내치지만 않으셨어도 은퇴하시기 전에 한 번은 제대로 수강을 해봤을텐데) 수십 년 전 학술 잡지를 뒤지다가 이 분이 아마도 박사 학위 따고 얼마 안된 소장 학자일 때 내셨을 논문에 대한 평을 봤다. 상당히 아프게 까는 평이었다. …그걸 읽고 내가 그 교수님께 다소의 친근함을 느끼며 동시에 ‘우히히히’하는 기분이 들었던 건 결코 내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다. 어떤 분야든 덜떨어진 풋내기들에게는 자기만 삽질하는 게 아니고 자기만 못난 게 아니라는 확신이 정신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데 ‘나처럼 실수하거나 까이는’ 대상이 평소 까마득하게 높아보이던 인물이면 위안의 효과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자네가 보내준 건면시대들은 아주 맛나게 잘 먹었다네.지존은 역시 청국장 맛이었어. 컵라면에서 콩이 씹힌다는 건 정말로 획기적이 일이야. 국민 소득 2만 불 시대에는 바로 이런 컵라면이 필요해. 치즈맛도 꽤 좋았고 소고기장국도 괜찮았지. 어느 맛이든 럭셔리한 건데기 수프가 압권이었네.
보내준 극세사 목욕 가운은 실제로 입진 않고 끌어안고 비비적대며 살고 있다네. 안감까지 극세사라는 점이 감격의 포인트였어. 다시 한 번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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