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사 수업 정리<1>
표준 독일어의 역사는 대략 세 시대로 나뉜다. 옛높은땅독일어(Althochdeutsch), 가운데높은땅독일어(Mittelhochdeutsch), 새높은땅독일어(Neuhochdeutsch). '높은땅'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은 현대 독일어의 모태가 된 것이 알프스 쪽 남독일 고도 높은 지역에서 쓰던 말이기 때문이다. 세 시대 중 가장 최근의 독일어는 새높은땅독일어(Neuhochdeutsch). 대략 1350년 경부터 현재까지의 독일어를 일컫는다. 1350년에서 1650년 경 사이의 독일어는 이른새높은땅독일어(Frühneuhochdeutsch)라고 따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가장 난감한 시대다. 18세기 이후의 독일어는 현대 독일어와 문법 면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현대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따로 훈련 받지 않아도 읽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14세기 이전의 독일어는 독일어가 모국어인 사람이라도 그냥 봐서는 정확한 독해가 불가능하므로 그 시대 유명한 문학 작품들은 엔간하면 현대 독일어로 번역이 되어 있다. 그러나 14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부터의 독일어로 된 작품, 특히 르네상스 이후의 작품들은 '굳이 현대 독일어로 번역해서 출판하는 게 보람있을 정도로 이상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읽는 사람의 신경은 충분히 건드릴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한 독일어'로 씌어있는 게 보통이다. 한국어랑 비교하자면 신소설들을 원문 그대로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 정도 될까. 차라리 그보다 더 오래된 작품들이면 그냥 현대독일어 번역 보고 읽으면 되는데 이 시대 책들은 따로 번역도 없어 원문을 그냥 읽는 수밖에 없다. 지난 학기 이 시대 작품 셋을 다루는 수업을 들었는데 결국 내가 레포트쓴 작품만 전체를 읽고 나머지 두 편은 읽다 말았다. -.-

1150년 경에서 1350년 경까지는 가운데높은땅독일어(Mittelhochdeutsch)다. 가운데높은땅독일어와 새높은땅독일어를 가르는 기준은 모음들의 발음 규칙 변화를 비롯한 몇몇 발음 차이다. 독일 중세 문학의 최전성기로는 보통 13세기를 꼽고 따라서 독일 중세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대부분 가운데높은땅독일어로 되어 있다. 만약 언어사 수업을 듣지 않은 일반 독일인이 이 시대 독일어를 본다면 꼭 한국 사람이 자동 번역기로 돌려서 나온 한국어 문장을 볼 때의 기분과 비슷할 것이다. 단어들은 현대 독일어와 많이 겹치치만 뉘앙스와 쓰이는 맥락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다 동사 변화 규칙도 다르기 때문에 읽고 있으면 전체적인 뜻은 어렴풋이 감이 잡히지만 정확하게 해석하긴 힘들다.

1050년 이전의 독일어 조상은 옛높은땅독일어(Althochdeutsch)다. 보통 역사가들에게 시대 구분은 기준에 따라 이렇게도 갈랐다 저렇게도 바뀌었다 헷갈리는 일이지만 운이 좋게도 가운데높은땅독일어와 옛높은땅독일어의 구분을 갖고는 머리 썩일 일이 없다. 연구자 입장에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1050년부터 1150년 사이에는 전해내려오는 독일어 문서 자료가 거의 없어서 이 시대는 그냥 없는 셈 쳐버리고 그 전은 옛높은땅독일어, 그 후는 가운데높은땅독일어 하고 구별하면 장땡이기 때문이다. 이러다 어느날 신내림 받은 연구자가 땅파서 1050년부터 1150년 사이의 독일어 문서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면 아마 학계가 발칵 뒤집어지겠지만 아직까지 어느 대학 언어사 교수가 신내림 받았다는 소리는 못들어봤다. 한편 옛높은땅독일어의 시작은 대략 8세기 중반으로 잡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독일어 문서가 770년 경 쓰인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독일어 문서라고는 해도 정말 독일어 문장들이 줄줄 적힌 건 아니고 일종의 라틴어 - 독일어 단어집이다. 아마 초짜 수도사들의 라틴어 학습서 용도였을 거라 사료된다. 문서 자료가 전해지지 않는 8세기 중반 이전 독일어라고 아예 연구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고 오래된 지명이나 사람 이름같은 고유명사나 비석 같은 데 새겨진 단어 등을 갖고 연구한다고 한다.

옛높은땅독일어는 말이 독일어지 그냥 외국어다. 사전 지식 없이 볼 경우 한페이지 통틀어 알아볼만한 단어가 기껏 두어개정도 될까. 게다가 문법도 현대 독일어보다 더 까다로워서 독일 학생들도 한 학기 수업만으로는 옛높은땅독일어 텍스트를 줄줄 해석하는 게 불가능하다.

또한 시대가 오래되었다보니 전승되는 문서 자료도 별로 없어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기도 힘들다. 가운데높은땅독일어 정도만 되어도 전승 자료가 꽤 되기 때문에 '이것이 가운데높은땅독일어 문법 최종판!'하는 식의 책도 쓸 수 있고 가운데높은땅독일어로 작품활동한 시인들 비교하면서 누구 글빨이 누구보다 낫네 어쩌네 평가도 할 수 있지만 옛높은땅독일어 자료는 시 한구절 주문 한 줄이 다 귀중한 자료라서 한낱 후대의 연구자 따위가 감히 잘썼네 못썼네 건방지게 평가할 게 못된다. 아니 작품 퀄리티 비교를 할라 해도 작품 수가 좀 모여야 서로 비교를 하지 다 합쳐봐야 몇 편 된다고 그 안에서 등수를 가르겠는가. -_-

대략 7세기 이전에는 따로 독일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고 그 때 살았던 독일인 조상들이 벙어리였다는 얘긴 아니고 따로 독일어, 영어, 노르웨이어 하고 가를 것 없이 그냥 대충 '게르만 어'라고 뭉뚱그려 존재했단 얘기다.
by 하일트 | 2004/12/26 11:00 | 주전공잡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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