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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후 한 달 반 가량이 지난 베를린 엘리, 이번에도 모두 메인 캐스팅이었던 세 번째 감상.
1. 그라시니를 살려주세요- !! 96 년 라이브 앨범에서 목이 졸리기도 전에 목이 맛이 간 루케니로 악명을 떨쳤던 브루노 그라시니, 슈투트가르트와 일본에서는 멀쩡한 루케니로 부활, 명예회복을 이루는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브루노가 목이 약해서 공연을 자주 하면 일찍 목이 상하는 타입이 아닌가 싶다. 한 달 반 내내 공연을 한 현재 브루노의 목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았다. 듣고 있자면 제작진에서 브루노만 따로 불러내 공연 끝나고도 내내 굴렸나, 혹시 저러다 물랑 루즈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무대에서 피 토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공연 내내 루케니가 나올 때마다 캐스팅 담당자를 붙들고 „제발 그라시니를 살려주세요!!“라고 호소하고팠던 심정. 2. 마님의 씨씨는 베를린에서도 진화중인데 아마 전투형으로 진화하시나보다. 날이 갈수록 사나워지고 계신다. 마님과 맞춰 변하기 때문인지 우마왕의 죽음 역시 강하고 사납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둘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이 몸이 춤추실 때’는 두 마리 야수의 서로 물어뜯는 포효였다. 보통 다른 캐스트들의 경우는 씨씨가 전투형이라도 죽음은 연인형이거나 다른 타입이여서 이 몸이 춤추실 때가 씨씨의 일방적인 죽음 학살극;;이 되기 일쑤였는데 피아 마님과 우마왕의 경우에는 워낙에 서로 팽팽해서 한 쪽이 관광당하는 게 아니라 대등하게 맞싸우다 보니 결투형 이 몸이 춤추실 때 중에서는 최고의 연주였다. 이 날 공연, 이 몸이 춤추실 때만으로도 표값 본전이 뽑히더라. 3. 우마왕의 목상태는 계속 아슬아슬하다. 전투형으로 변하고 있는 마님에 맞춰 같이 전투를 치르다보니 파워는 이전 공연보다 더 압도적인데 그에 비례하여 삑사리의 위험도도 증가한다.;; 4. 평소에는 스테이지 도어를 안 뛰지만 마침 베를린에 체류 중이신 고기 님이 동행인 터라 오늘은 스테이지 도어를 갔다. 오늘 처음으로 엘리 공연을 봤다는 중국 아가씨를 거기서 만났는데 우마왕이 나오니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더라. 과연 우마왕이 스타라서 나오자마자 스테이지 도어의 여성팬들에게 완전 포위되었으나 고기 님과 나는 우마왕은 쉬크하게 무시해주고 그라시니에게 달려붙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기 님이 들이대셨고 난 옆에서 통역을 했다. 고기 님이 2 년 전 슈투트가르트에서 그라시니의 루케니를 봤다는 말에 그라시니는 반가워하며 어느 쪽이 맘에 드냐고 물었는데 평에 있어서는 거짓말 못 하는 나는 솔직하게 슈투트가르트 때가 더 좋았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피곤하냐, 감기 걸린 건 아니냐고 에둘러 묻는 말에 그라시니는 „엥? 전혀 아닌데?“하고 반응했으나…차마 대놓고 „너 목 완전히 갔더라“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니르 님께 ‚그라시니의 탄탄한 가슴’에 대해 세뇌되었기 때문에 그라시니를 나도 모르게 제법 거구로 생각하고 있던 터라 스테이지 도어에서의 여리여리해보이기까지 하는 그라시니에 약간 놀랐음. 사실 당장 그라시니가 코 앞에 있을 때는 탄탄한 가슴이고 빈약한 가슴이고 전혀 못 떠올리고 있다가 그라시니가 가버린 다음에야 니르 님의 강조가 기억이 나서 „아아, 그라시니가 정말로 글래머인지 확인할 기회였는데…“하고 땅을 쳤다. 5. 그 후 피아 마님도 나오셨는데 피아 마님이 상당히 글래머러스 하셨음은 뚜렷하게 눈에 보였다.(…) 피아 마님과 루돌프 역의 올리버 아르노에게 고기 님은 사인을 받고 사진도 찍으셨지만 난 찍사 노릇만 하며 얌전히 있었다. 올리버 아르노의 루돌프가 발전하고 있고 자기 개성을 갖췄음은 인정하지만 너무 연약한 루돌프라 내 입맛에는 안 맞는다. 6. 그렇게 아껴뒀던 빠순심을 누구를 향해 발산했냐면 오늘 앙상블을 뛰었던 우리 마틴에게 발산했다.(…) 우리 마틴이 앙상블을 뛰었다는 건 출연진 명단에서 확인했고 실제로 앙상블 파트에서 마틴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으며 내가 스테이지 도어에 간 목적은 마틴 한 번 보쟈스라였으나 난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보는 증상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웬 금발 총각 하나가 나왔을 때도 누군지 몰랐다.(우베도 금발 염색 상태고 루돌프 역 올리버 아르노도 금발이고 해서 출연진 중 금발남이 흔하다) 근데 그 금발 총각에게 고기 님이 달려들어 2 년 전 슈투트가르트가 어쩌고 루돌프가 어쩌고 하시는 거 아닌가. 금발 총각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옆에 같이 뛰어들어 „당신 언제 프란츠 요제프를 뛰어요?!“하고 캐물었다. 우리 마틴은 엘리의 모든 남자 배우 역을 해보는 게 목표인지 베를린에서는 루돌프는 안하고 죽음과 프란츠 요제프(…)의 커버를 뛰고 있기 때문이다. 마틴의 프란츠 요제프라니 그거 참 여러 모로 특기할 아이템이겠다고 고기 님과 얘기를 하던 참이라서 마틴을 보자마자 그 질문부터 나왔다. 마틴은 프란츠 요제프는 어느 날 하는지 확답을 못해줬고(하긴 내가 캐스팅 담당자래도 마틴에게 프란츠 요제프를 떡 맡기기 전에 춈 많이 망설일 것이다;;) 28 일 낮공연에서 자신이 죽음을 뛴다는 정보를 주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한국이라는 답에 „1 년 쯤 있다 한국에도 엘리가 간다는 소문이 돈다“라고 말을 했다. 그 소문은 고기 님과 나도 진작 듣고 있던 거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엘리가 아니다. 엘리가 한국에 가든 말든 하나도 안 중요하다.(…) 내 질문은 „Can we see you in Korea?“였다. 마틴은 자기는 갈 수 있을지 모르고(사실 마틴은 이미 엘리 뛰러 일본까지 갔다 왔는데 한국까지 굳이 또 가고 싶겠냐 -.-) 어쨌든 엘리는 한국에 갈 거라고 대답했다. 엘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던 나는 „You’re my favorite Rudolf and I’d love to see you…“하고 마치 „당신은 루돌프를 다시 뛰기 위해 한국에 와야한다“라는 듯한 메시지를 전했다. 사실은 나야 마틴이 한국 안 가고 베를린 있어주는 게 훨씬 좋지만(…), 그리고 마틴은 루돌프를 다시 하기에는 나이가 들었음을 알지만 마틴 쪽에서는 내가 베를린 사는 사람인 줄 모르고 하다보니 대화가 그리 흐르더라. 저 대화가 영어였던 건 고기 님이 마틴에게 영어로 말을 거셨고 마틴이 계속 영어로 대답하고 그러다보니 끼어든 나도 영어를 쓰게 된 탓이다. 내가 마틴에게 해본 유일한 독어는 함께 사진을 찍은 후의 „Vielen Dank“였다. 사진 찍을 때 미친 척 마틴 허리에 팔 둘러 볼까하다 비츠케한테 미안해서 참았다.(…) 스테이지 도어 죽순죽돌이인 듯한 다른 그룹은 마틴 붙들고 비츠케 얘기도 하더라. 우리 마틴이 무척 털털한 동네 형 인상이라 왜 다른 분들이 ‚마틴 형, 마틴 형’하시는지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러면서 또 낼 모레면 마흔되는(…) 남자답지 않게 귀엽더만. 근데 스테이지 도어에서 볼 때는 마틴을 그냥 ‚내가 제일 좋아하는 루돌프’로만 인식해서 화기애애하게 팬심을 전달했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오면서 마틴이 드라큘라 장트 갈렌 공연 때 아서 홈우드 역도 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갑자기 온몸이 불타듯 민망해졌다.(…) 어머나, 나 아서 역 한 남자랑 사진 같이 찍었…;; 그리고 마틴에게 „당신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루돌프“ 운운하는데 예습이에게 하나도 안 미안해서 미안했다.(…) 7. 고기 님의 최종 목표는 역시 오늘은 앙상블을 뛴 페터 S를 만나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법 기다려봐도 – 막판에는 고기 님과 나, 그리고 다른 팀 두 명 밖에 스테이지 도어에 없었다 – 페터가 안 나오기에 철수 결정을 내리고 극장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피아 마님이 다시 지나가시는 게 아닌가. 잠시 피아 마님을 붙들고 „페터 좀 불러주세요“하려다가 그게 웬 피아 다우스의 굴욕이냐, 오늘 마님 공연 잘 보고 사람이 그리 살면 안되지 해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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