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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아랍 시각으로 본 십자군을 읽고 있다. 베이루트에서 출생하여 파리에서 언론인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아랍 출신 기독교인이 쓴 책. 서구 학자들은 언어 장벽으로 접하기 힘든 아랍어 사료들을 바탕으로 일반인 독자 눈높이에 맞춰 ‘이런 이런 일이 있었다’고 사건 위주로 알려주는 대중서인데 쓴 사람이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작가라 그런지 역시 전문 역사학자가 쓴 것보다 재밌다.(…)
서구에서 발간된 기존 십자군 관련 서적들을 읽을 때면 먼 중동까지 기어가 삽질을 연발한 프랑크 군만큼 멍청하게 전쟁을 한 군대도 세상에 또 없지 싶었는데 과연 시각을 바꾸어 아랍인들의 시각에서 보니 천하의 등신은 무슬림들이었다. 이래서 여러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게 중요한가보다. 사례 1: 안티옥 공방전 끝물 무렵의 어느 전투에서 프랑크 인들은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는 무슬림 지원군을 추격하지 않았다. 이유는 ‘진짜 전투는 아직 서로 치뤄보지도 않았고 고로 쟤네가 도망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도망가는 걸 보니 이건 함정이 분명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은 함정 따위는 없었고 무슬림 지원군은 순수하게 싸움이 무서워서 도망간 것 뿐이었다. 사례 2: 전투 민족인 프랑크 인들과 문화 민족인 무슬림들은 뇌 구조가 아예 달랐다. 화성에서 온 프랑크 인, 금성에서 온 무슬림이라 보면 얼추 맞다. 무슬림들이 자기들끼리 분쟁에 바빴다 해도 고향 땅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손해를 보는 건 자신들인지라 가급적 프랑크 인들을 좋게 좋게 달래보려 시도했다. 왜냐면 프랑크 인들이 자신들의 목표는 성지 예루살렘이라고 고래고래 선전을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까지 가는 중간의 시리아 땅의 제후들은 ‘쟤네들 목표는 우리 땅을 먹는 게 아니라 예루살렘이다, 길만 곱게 내주면 쟤네들은 얌전히 예루살렘까지 가겠지’했다. 그리하여 트리폴리스의 제후는 프랑크 인들의 사자들을 초청했다. 평화적인 경유를 위한 조건을 협상하기 위해서였다. 제후는 프랑크 인들이 불필요한 유혈을 피하고 가급적 서로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만드는 길을 선택할만한 고등생물일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트리폴리스의 부유함과 선진국스러움에 입이 딱 벌어진 촌뜨기 프랑크 사자들은 본진으로 돌아가자 ‘저길 치면 엄청난 약탈품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설레발을 쳤다. 프랑크 인들은 즉각 제후의 영지 한 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공격받은 영지 주민들이 투혼을 발휘하여 프랑크 인들은 씨불거리며 물러났다. 닭 쫓던 미친개 모드의 프랑크 인들이 트리폴리스 주변을 지날 때 저 미친 것들이 언제 또 짖으며 달려들지 잔뜩 긴장한 제후는 군량을 바리바리 싸서 프랑크 인들에게 전하며 살살 달래보냈다. 사례 3: 1차 십자군 당시 무슬림들이 쉽게 예루살렘까지 길을 내주고 만 이유 중 하나는 무슬림들 스스로 세력 다툼 때문에 프랑크 인들보다 서로를 더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임은 잘 알려져 있다. 십자군 전쟁의 직접적인 계기는 소아시아에 세력을 확대해가는 셀주크 투르크에 밀린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교황에게 ‘우리가 남이가, (동서방 교회 분리 때문에 실제로는 남 맞음) 와서 여기 이교도들 좀 쓸어다오’하고 SOS를 쳤기 때문인데 정말로 프랑크 지원군이 비잔틴 제국을 돕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집트의 재상은 입이 귀밑에 걸려서 비잔틴 황제에게 ‘굿 잡’이라는 축전을 보냈다. 꼴보기 싫은 순니 파 놈들이 엿먹을 걸 생각하니 시아 파 재상은 너무너무 행복했던 것이다. 그 재상이 죽고도 한참 지나서의 일이지만 예루살렘 왕국이 멸망한 뒤 프랑크 십자군은 타겟을 예루살렘에서 이집트로 바꾼다. 위의 십자군 얘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뜬금 없이 생각난 옛날 일 하나. 부전공하는 과에 제법 엄격한 인상의 노교수가 한 분 계셨다. 지금은 은퇴하고 좀 되셨으니 68 혁명 전에 대학을 다닌 옛 세대 독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젊은 세대 교수들은 대충 넘어가는 규칙도 꼼꼼하게 따지는 분이었는데(그치만 유머 감각은 또 풍부하신 분이셔서 수업은 재밌었심. 그 분이 원칙을 내세워 아직 당신 수업 들을 레벨이 안되었던 나를 내치지만 않으셨어도 은퇴하시기 전에 한 번은 제대로 수강을 해봤을텐데) 수십 년 전 학술 잡지를 뒤지다가 이 분이 아마도 박사 학위 따고 얼마 안된 소장 학자일 때 내셨을 논문에 대한 평을 봤다. 상당히 아프게 까는 평이었다. …그걸 읽고 내가 그 교수님께 다소의 친근함을 느끼며 동시에 ‘우히히히’하는 기분이 들었던 건 결코 내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다. 어떤 분야든 덜떨어진 풋내기들에게는 자기만 삽질하는 게 아니고 자기만 못난 게 아니라는 확신이 정신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데 ‘나처럼 실수하거나 까이는’ 대상이 평소 까마득하게 높아보이던 인물이면 위안의 효과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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