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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팀 버튼의 영화판 스위니 토드를 보며 떠올리고 만 선현의 지혜였음. 아놔, 꼬맹이 터비에게마저 가창력으로 관광당하는 스위니와 거지녀보다도 노래를 못하는 러벳 부인 어쩔거야. 전문 뮤지컬 배우 아닌 건 마찬가지라도 앨런 릭맨과 사샤 바론 코핸은 극 전체에서 노래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서인지 무난했는데(실제 뮤지컬 무대에서도 조역을 뮤지컬 전문 배우 아닌 일반 배우에게 주는 경우는 자주 있잖나) 타이틀 롤인 스위니와 거의 스위니만큼 노래를 많이 부르는 러벳 부인은 정말이지 이게 ‘뮤지컬’영화가 아니라 뮤지컬’영화’니까 가능한 캐스팅이었음. 에피파니를 장렬하게 안티 클라이막스로 만들어버리는 조니 뎁을 보며 ‘연기 귀신 조니 뎁이 저렇게 허접해보일 수도 있구나, 꼭 알렉스 K의 영화판 같아’하고 감탄했고 이런 걸 사운드 트랙으로 만들어 팔아먹는 상술에 한 번 더 감탄했다. 차라리 전 출연진이 다같이 노래를 못했으면 하향 평준화로 서로의 흠이 가려졌을지도 모를 일인데 안토니와 조안나, 터비는 또 멀쩡해서 주연 둘이 노래를 시작할 때마다 ‘어떻게 애보다도 못하냔 말이다!’고 손가락질하게 되더라는. 그래도 친구들하 부를 때까지는 조니 뎁 연기빨로 어찌어찌 커버가 되었으나 친구들하보다 난이도가 높은 에피파니에서 밑천이 드러나더니 그렇게 한 번 이미지 깨지고 나니까 그 후로는 조니 뎁이 노래 시작할 때마다 두려워질 정도였음. 스위니 토드 처음 접하고 에피파니 난생 처음 듣는 나도 그게 아마추어가 그냥 덤빌 곡이 아님을 알겠더만 대체 무슨 배짱이었던게냐. 알렉스 K 때도 느꼈지만 난 연기 잘하고 노래 못하는 뮤지컬 배우보다는 차라리 연기 딸려도 노래 잘하는 배우가 좋아.
팀 버튼이 워낙 특유의 스타일이 확실한 감독이다보니 위에 쓴 대로 ‘뮤지컬’ 영화가 아니라 뮤지컬 ‘영화’라는 느낌이었다. 시각적 이미지가 압도적이기도 해서 기본적인 인상은 팀 버튼 영화 한 편 보는구나였고.(그래야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의 기용이 정당화됨) 난 스위니 토드의 무대 버전을 보기는 커녕 음반조차 들어보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원작 뮤지컬과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무대 버전과는 여러 모로 바뀌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이 들었다. 근데 스위니 토드 무대에서 보신 분들, 뮤지컬에서도 안토니와 조안나의 비중은 저리 뜬금없나효 쟤네 대체 왜 나오는 건가효 전 걔네 둘이 스위니의 복수극에 중대한 갈등을 일으킬 줄 알았는데 그냥 스위니랑 안토니랑 둘이서 조안나 한 곡 부르고 땡인가효 손드하임이 그냥 젊은 배우들도 노래 부를 기회 주려고 만들어넣은 애들인가효 이거 나름 고대 운명 비극 컨셉같은데 운명 비극이면 안토니랑 조안나가 저리 그냥 휙 퇴장하면 안되는 거지 않나효. 난 ‘이발사가 마누라와 딸의 복수를 하느라 면도칼로 사람들을 죽인다더라 사람 고기로 파이 만드는 여자가 이발사를 좋아한다더라’ 딱 여기까지만 내용을 알고 갔기 때문에 거지녀의 반전은 나한테는 진짜 반전이었음. 인투 더 우즈랑 암살자들 캐스트 앨범 들어보다가 ‘에이씨 난 영어를 몰라서 손드하임의 작품 세계를 이해 못하게써’하고는 손드하임에게 일절 관심을 끊어버린 전력이 있는지라 아무런 기대 안하고 갔다가 왜 손드하임 뮤지컬은 몇 곡을 귀로만 들어서는 안되고 전체를 봐야한다고 말들을 하는지 이해했다. 의외로 서정적이었던 멜로디들도 취향이었심. 하도 손드하임 난해하고 매니악하다는 소리를 들어서 현대 음악 콘서트 가는 기분으로 음악에는 전혀 기대를 안했는데 의외로 멜로디들이 중독성이 있더라. 특히 예쁜 여자들이랑 조안나는 영화 끝나고도 계속 따라 흥얼거리게 되더라는. 하지만 영어는 역시 장벽이었다. 나 스위니랑 러벳 부인이랑 터비 대사들 못 알아듣겠심. O>-< 나 아직도 터비가 팔던 약이 머리카락에 무슨 작용을 하는 약인지 이해 못했다.(…) 반면 신분과 자라온 환경의 차이가 억양에서 드러나는지 다른 모든 등장 인물들의 대사가 외계어로 들리는 가운데 판사랑 조안나의 대사는 귀에 쑥 들어와서 순간적으로 앨런 릭맨이 한국말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1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드라조나 동인질한 게 드디어 빛을 발한 것이 예전같으면 그냥 모르고 넘어갔을텐데 러벳 부인의 의상을 보고 ‘저 시대에 거리에서 저런 가슴이 드러나는 옷이라니! 버럭!’하게 되더라는. 우와, 드디어 나도 빅토리안 조를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뮤지컬 ‘영화’라 해도 나처럼 손드하임에 등 돌리고 살던 사람에게는 괜찮은 떡밥이라 한 번 낚여볼까 하고 스위니 토드 음반을 구하러 시내 대형 음반점으로 갔다. 근데 빌어먹을 영화 사운드 트랙 밖에 없어서 지름신이 나를 버리셨도다 하고 그냥 왔다. 출연 배우들의 팬이거나 스위니 토드 매니아라서 모든 음반 판본을 수집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운드 트랙을 20 유로 가까운 돈을 주고 살 수도 있겠지. 근데 난 둘 다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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