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줄 잡담, 철수 가곡
1. 라스무스의 로미오를 듣고 동한 김에 간만에 빈 판 라이브를 듣다가 문득 한국에서 NDP 말고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라이센스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NDP 에 비해 로미오와 줄리엣이 훨씬 다른 문화권에 적응이 쉬울 거 같거든.

NDP 는 사실 너무 프랑스 적인 요소가 강하잖아. 원작이 빅토르 위고라는 것 뿐 아니라 개작한 면들마저 오늘날 프랑스의 상황을 시사적으로 반영한 거다 보니(난민 문제, 인종 문제 같은 거) 한국에서 작품을 다 살리기가 힘들 거 같아. NDP 프랑스 원버전 빼면 다른 유럽 국가 제작들도 팬들에게서 구리다는 소리 듣잖아.;;

반면 로미오와 줄리엣 쪽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영국 극작가가 쓴 것을 프랑스에서 뮤지컬화 한거다보니 시공간의 제약에서 상당히 자유롭거든. 애당초 뮤지컬 버전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무척 자유롭고 말이야.(셰익스피어가 문화 유산인 영어권에서라면 절대 엄하게 죽음을 끼워넣는다든가 하는 짓거리는 생각 못했을 것임) 로미오와 줄리엣 빈 판이나 헝가리 판이 또 그만큼 프랑스 원 버전에서 자유롭게 독특한 색채를 가지는 거 보면 한국에서도 우리식 로미오와 줄리엣 만들어도 괜찮을 거 같아. 사실 빈 판을 듣다보니 젊은 가수들 연기는 좋은데 가창력은 아쉬운 게 한국 배우들 쓰면 음악적인 면에서는 이보다 더 나은 버전이 나올 거란 생각이 들고 또 캐릭터들이 젊고 감정적이다보니 경험 적은 배우들도 괜찮은 무대를 보여줄 것 같아. 아, 상식적으로 괜찮은 프롤로 역 배우를 구하는 게 쉽겠냐, 괜찮은 로미오를 구하는 게 쉽겠냐. NDP 는 프랑스 판 오리지널 멤버의 라이브 버전이 워낙 강력해서 엔간히 잘 만들어도 그거 따라가기 힘들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프랑스 판은 연기를 못하고 빈 판은 노래가 딸리고 런던 판은 가사가 극악 + 싼 티 만땅이라 한국에서 어지간히만 만들어도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한국 라이센스 뮤지컬은 맨날 번역 문제로 욕먹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미 런던판이 저 바닥을 깔아놔서 괜찮아.<- 로미오와 줄리엣은 한국판도 분명 들어줄만 할텐데 그거 만들어주면 안되나.

덧붙여 빈 판 소감: 연기가 마음에 드는 건 루카스나 라스무스인데 목소리가 감각적으로 마음에 드는 건 마티아스다. 결투 송 같은 때 벤볼리오 목소리 들리면 괜히 반갑고 기분이 좋아져서 벤볼리오 파트만 따라간다. 운명의 상대인가.(…) 그리고 내가 문학도다보니 하는 생각인데 죽음 장면에서 머큐쇼 역의 라스무스가 전해주는 에너지같은 글을 쓸 수 있다면 대단할거야.

2. 철수 팬이신 모 님이 던져주고 가신 철수의 왕년 가곡 음원을 들어봤음. 소감은 “총각, 자네 어쩌다 뮤지컬을 하게 됐나?”

성악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 자체가 팝이나 락보다는 성악을 할 때, 특히 가곡을 부를 때 장점이 극한으로 발휘되어 말이지. 반면 이 목소리로 드라마틱한 연기 쪽은 힘들잖아. 철수가 설마 이 목소리로 하이드를 뛸 수 있겠냐 위 윌 락 유를 하겠냐. 게다가 성악은 워낙 타고난 목청으로 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덴데 이 천부적인 목소리를 다른 장르에 써먹는다는 게 아깝다. 일단 이 정도 목소리 타고난 이상 본인이 노력만 하면 독일 가곡계에서도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거 같은데.

한편 철수와 같이 공연하는 여자분 쪽은 반대로 “아니, 왜 가곡을 하십니까?”라고 묻고 싶었다. 노래를 못한다는 게 아니라(목청 자체는 이 분도 좋았심) 이 여가수 쪽은 드라마틱한 오페라 디바로 활약하면 좋을 목소리지 그리 가곡에 어울리는 음성은 아니었다. 아 뭐 바그너 여가수도 가곡 음반 잘만 내긴 한다만 그래도 기왕이면 살로메나 투란도트 같은 거 뛰시지 왜 가곡 리사이틀 장에 오셔서…;; 게다가 철수랑 음색도 서로 안맞음;;

Der_Nussbaum.mp3

가사는 다음과 같음. 집 앞에 선 호두나무와 집 안에 사는 혼기에 찬 처녀에 대한 내용인데 시는 번역하려면 머리 아파서 관둠.

Es grünet ein Nußbaum vor dem Haus,
Duftig, luftig breitet er blättrig die Blätter aus.
Viel liebliche Blüten stehen dran;
Linde Winde kommen, sie herzlich zu umfahn.
Es flüstern je zwei zu zwei gepaart,
Neigend, beugend zierlich zum Kusse die Häuptchen zart.
Sie flüstern von einem Mägdlein,
Das dächte die Nächte und Tage lang,
Wußte, ach! selber nicht was.
Sie flüstern - wer mag verstehn so gar leise Weis? -
Flüstern von Bräut'gam und nächstem Jahr.
Das Mägdlein horchet, es rauscht im Baum;
Sehnend, wähnend sinkt es lächelnd in Schlaf und Traum.
by 하일트 | 2008/01/15 21:37 | 뮤지컬 잡담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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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티타니아 at 2008/01/16 02:56
클래식 쪽은 꾸준히 이런저런데 나가는걸 봐선 아직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빠순이로써는 오빠가 이거저거 아무거나 지저귀어주면 마냥 고맙지만 저거 듣고 있으면 그냥 뮤지컬 접고 한 우물만 팠으면 좋겠어요(....저도 팬질 좀 안락하게 할 수 있고<-)
꿈의 역에 '지저스' 있는거보고 캐뿜었다니까요.ㅠㅠ(어차피 시켜주는 사람도 없겠지만) 폰 크로록, 죽음과 함께 제발 참아줬으면 하는 역 best 3 중 톱으로 꼽힙니다.
Commented by 하일트 at 2008/01/16 19:58
지저스...(침묵) 그래도 유다가 아닌 게 어딥니까.(위로랍시고 한다) 클래식 완전히 접은 게 아니라니 저도 기쁘네요. 그리고 그 댁 오빠는 적어도 작곡은 안하잖아요.(...)
Commented at 2008/01/17 08:4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하일트 at 2008/01/17 22:07
네, 롬앤줄 라이선스 해줬으면 좋겠어요. 음악도 대중성 있어서 귀에 착착 감기고 한국 가수들이 목소리가 참 좋잖아요. 비공개 님도 행복한 한 주 되십시오. ^^
Commented at 2008/03/04 11: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하일트 at 2008/03/04 22:37
우와, 제 블로그에서 뮤지컬 잡담 시작하고 처음 보는 '정식 출반되어 현재 유통 중인 음반 공유 요청'이군요. 제가 지금보다 개념 모자라던 시절에 막 뿌려댄 전과가 있으니 이런 요청 듣는 것도 자업자득이려니 합니다만(요청하면 막 줄 사람처럼 보인 거죠?) 대답은 '안됩니다'와 '싫습니다'입니다.
Commented at 2008/03/05 08: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하일트 at 2008/03/05 19:49
빈 연합 무대 제작사의 음반들은 이런 저런 엠피 쓰리 판매 사이트에서도 취급합니다. 그 경우 중요한 몇 곡만 구입할 수도 있고 하니 학생 입장에서도 별로 부담되는 가격은 아닐 겁니다.
Commented at 2008/03/05 22:56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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