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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돌아다니다 재밌어 보여서 건진 문답.
1. 팬픽을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가? 아마도 한국 사람이 쓴 캔디 속편(거기서 홀라당 삭발을 당했던 게 캔디였는지 아니면 다른 여자 캐릭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이 내가 접한 최초의 팬픽션이었겠지만 당시에는 팬픽션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팬픽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지난 세기 피씨 통신 시대 은영전 팬픽들을 접하고 나서였다. 그 후 짤막하게 버닝하는 작품들이 생기면 번역기를 의지해 일웹들을 돌며 팬픽들을 찾아보곤 했다. 하지만 일본어를 하지 못해 번역기에 의존해야하는고로 가끔씩 생각나면 찾아보는 수준이었지 생활의 일부(…)가 되진 않았다. 본격적으로 팬픽 문화를 흡수하게 된 것은 반지 동인녀 시절 주옥같은 서역 슬래쉬들을 접하면서. 영어가 외국어라 해도 독해는 되다보니 번역기가 토해놓은 암호문 조립해야 하던 일본 팬픽과는 맛이 다르더라. 게다가 반지가 전세계적인 메이저다보니 워낙 풀이 넓어 고수들이 참 많았다. 왜 무협지같은 거 보다보면 내공 높은 도사가 수련하는 거 훔쳐보던 여우 새끼가 보고 따라한 것만으로도 둔갑술을 익힌다느니 여우 신선이 된다느니 하는 설정들 있잖은가, 잘 쓴 사람들 것 어깨 너머로 보고 다니다보면 본인 스스로는 설령 좋은 작가가 못되더라도 어쨌든 글 비슷한 걸 써서 완결내는 시늉은 할 줄 알게 된다. 여기서 ‚너는 한국인이면서 왜 한국 팬픽계의 이야기가 안나오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내가 버닝한 작품들은 한국 동인계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도 직접 생산자는 드문 마이너한 작품들이 주류였다. 설사 있다 해도 드문드문 흩어져 있어 동지를 찾기 힘들었고. 슬램 덩크 쯤 되는 작품에 열광했다면 한국어만 알아도 배부르고 등따신 생활을 했겠지만. 버닝하는 작품이 한국에서도 메이저가 된 건 반지가 처음이었다. 실제로 반지 때는 절반동에서 다른 분들과 어울리기도 했는데 내 살아 생전 그런 때가 또 올까 의문이다. 반지 때는 다들 변태 엘프광이고 변태 수염광은 얼마 없다고 슬퍼했으나 드라큘라 동인녀가 되고보니 반지 시절이 꿈만 같다.(…) 2. 팬픽을 읽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국내 은영전 팬픽들을 본 건 은영전 팬이라서 피씨 통신 은영전 팬클럽에 가입했다가. 아직 한 세기 전이라서(…) 당시 국내 팬픽계는 꽤 건전했던 걸로 기억한다. 남녀노소에게 두루 개방된 피씨 통신의 특성도 있었고 작품 자체도 은영전이 워낙 남성팬들이 많은 작품이라 여성향을 대놓고 내세울 수 없는 분위기였으니까. 일본웹을 돌면서 팬픽의 포르노적 가치에 눈을 떴고 그 가능성이 만개한 것을 확인한 건 서역 슬래쉬계를 돌면서였다. 모국어로 읽는 거라면 꼭 커플링에 집착하진 않았겠지만 어설픈 외국어 실력 내지는 번역기 도움으로 외국 웹을 돌아다니는 피곤한 짓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포르노적 동기가 필요했다. 왜, 일본어 못하는 이들도 일본 야동은 잘만 받아보고 영어는 중학교 수준인 사람들도 해외 포르노 사이트 결제는 문제 없이 해내지 않는가.(…) 3. 어떤 작가분의 팬픽을 가장 즐겨보는지? 데네파라를 쓰는 작가는 곧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좋아하는 커플링의 풀이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서 작가 따져 읽을 처지가 못되었다. 작가보다는 소재고 커플링이다. 그리고 팬픽의 특성상 좋아하는 작가라도 원소스가 되는 작품을 모르면 즐기기 힘들다. 결국은 캐릭터의 팬이지 작가 팬이라고 하긴 뭣하다. 지난번 문답에서 좋아하는 작가들을 몇 대긴 했지만 난 그리 찬양하던 후린네 작가님의 글도 스타워즈는 안 읽고 넘어갔다. 4. 좋아하는 커플링은 무엇인가? 반지 때는 처음에는 파라아라를 위시한 아라총수에 관심이 있다가 악마에게 데네파라 팬픽을 몇 편 받는 조건으로 영혼을 팔았다. 그 악마는 부업으로 스위스 장트 갈렌에서 뮤지컬 연출일을 하고 있…(지옥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끌려간다) 현재는 드라큘라X조나단 하커를 위해 정진중이다. 그 와중에 하커가 이런 저런 사이드 공들에게 수난을 겪는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근데 아직 안 끝났다.(…) 메인 커플링의 첫날밤을 쓰기 전 나는 손풀기를 해야 하고 하커는 몸풀기를 해야한다. 5. 그럼 반면에 마음에 안드는 커플링은 무엇인가? 반지 때는 보로파라 형제 커플링을 싫어해서 애를 먹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커플링 자체가 그리 싫었다기보다는 거기서 데네소르가 평면적인 악당으로 나오는 게 싫어서였다. 한국에서야 섭정가로 글 쓰는 사람들 자체가 몇 없었고 형제물이면 그냥 형제한테 집중하는 글이 대부분이었지만 서역에는 데네소르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형제물, 혹은 다른 커플링의 파라미르 팬픽들이 거의 대세라 해도 좋을만큼 많았다. 서역에서는 파라미르가 마이너라 하기는 힘들 정도로 풀이 제법 컸으나(심지어 요새도 간간이 팬픽들이 올라온다) 싫어하는 타입의 글들을 피하다보면 즐길거리는 확 줄어들었다. 데네소르가 악역이라는 걸 부정하려는 건 아닌데 왜 악역이라도 생명력이 있는 악당이 있고 종이인형같은 악당이 있잖은가. 드라큘라 쪽은 애초에 풀이 작아서 싫어하고 말고 할 건덕지가…-_-a 미나나 루시 말고 웬 메리 수가 나와 조나단이나 드라큘라와 노닥거리는 팬픽이라면 싫을 것 같지만 이런 건 그냥 써머리만 읽고도 피해 가서 아예 읽을 일이 없지 싶다. 6. 이런 글은 싫다! 어떤 글인가? 아예 형편 없는 글은 읽다가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기 때문에 기억에 남을 것도 없고…싫다기보다는 아까운 글들이 주로 기억에 남는다. 시작은 좋았는데 작가가 쓰다 팽개친 글들이라든가. 혹시 작가님 신상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노심초사하다 다른 팬덤에서 주지육림 벌이고 있는 꼴 보면 배신감에 치를 떨게됨. 가더라도 쓰던 건 맺고 가야할 거 아냐. 아님 글이라도 못쓰던가. 야오이 팬픽을 읽다보면 가끔 맞닥뜨리게 되는데 쓴 사람 스스로 그 장르에 대해 거북해하거나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글을 보면 짜증난다. 허나 고백하자면 반지 시절 내가 쓴 글들도 그 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어 팬픽 중에서는 일본어 번역투가 짙은 글은 싫어한다. 서역어 번역 어투는 심하지만 않으면 넘어간다. 나 스스로 서역 문학 전공자라 서역어 번역 어투에 젖어 살기 때문에 그 쪽은 감지를 못한다.(…) 7. 이런 글은 환영! 어떤 글인가? 잘 쓴 글. 잘 썼다는 기준은 참 여러가지인데 비교적 너그러운 독자라 장점이 일단 하나라도 눈에 띄면 좋아한다. 심리 묘사가 좋다거나 문장력이 뛰어나다거나 씬을 잘 쓴다거나 마음에 드는 농담이 들어있다거나 결말이 인상적이라거나 등등. 문학 전공하면 일반인보다 글 보는 시각이 더 까다로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게 시대를 뛰어넘은 고전들 말고 당대에만 좀 읽히다 잊혀진 글들은 결점들이 제법 되거든. 그런 작품들로 레포트 쓰면서 살다보면 글 보는 시각이 너그러워진다. 8. 맨처음 읽었던 팬픽은 무엇인가? 그 한국 사람이 쓴 캔디 속편이라니깐.(…) 9. 팬북을 살 때 가장 먼저 무엇을 보는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나오느냐 마느냐. 파라미르 나오면 다 질렀던 것 같…;; 데네파라 동인지가 나온다면 설사 못 읽는 나라 말이라 해도 사놓고 표지를 쓰다듬으며 흐뭇해할 것 같다. 한참 데네파라 버닝하던 시절이라면 설사 그 동인지의 언어가 독일어에 라틴어를 곱하고 슬라브어를 제곱한 것 같은 문법의 언어라도 배우겠다고 사전과 문법책을 질렀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 열성은 없고. 만약 드라큘라X조나단 동인지라면 한국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스웨덴어, 중세 독일어(…), 라틴어(…) 의 범위 내에서는 지를 것 같다. 스웨덴어와 비슷한 노르웨이어, 덴마크 어나 프랑스어와 비슷한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의 경우는 지르는 걸 긍정적으로 검토하겠고 일본어나 중국어일 경우 지인들에게 눈물로 읍소하며 번역이 안되면 요약이라도 해달라고 매달린다. 그러나 러시아어라면 포기하겠다. 머리가 굳어서 이 나이에 끼릴 문자 배우는 건 무리다. 10. 어떤 장르를 좋아하나? 패러렐 쪽에는 흥미 없다. 이름만 같고 완전히 다른 얘기니까. 캐릭터 이름마저도 바뀐다는 점에서 환생물도 싫어한다. 어덜트 팬픽션에서 발견한 드라큘라X조나단 대작이 작가 내공에도 불구하고 날 못 낚았던 건 환생물이라는 이유도 있다. 500 페이지가 넘는 작품의 반 이상을 조나단이 엉뚱한 이름을 달고 등장하기에 버닝할 수 없었다. If only 류의 AU도 원래는 꺼리지만 요샌 내가 쓰게 되었으니 할 말 없다. 쇼타에는 관심 없다는 이유로 거들떠도 안보던 학원물을 내가 직접 쓰는 판이니 이러다 나도 환생물 쓰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반지 때만 해도 내가 변태수염광에 중년광이라는 걸 모두가 알아주었는데 요샌 웹상을 돌아다닐 때면 여기저기서 손가락질하며 „페도파일, 페도파일“하는 소리가 들린다. 미치겠다. 11. 팬픽을 주로 읽는 편인가, 쓰는 편인가? (담배 한 대 물고) 비고 모텐슨 팬이라서 아라곤 총수에 열올리던 시절만 해도 내 자랑스러운 이름은 독자 하일트였다. 비고 팬이 된 게 두 탑 개봉 무렵이라서 이미 원정대 개봉 이후 전세계 동인녀들이 연성해놓은 결과물이 있었거든. 그러나 파라미르의 경우, 결과적으로 지금 쌓인 생산물들을 보면 파라미르도 그리 마이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갓 버닝 시작하던 당시에는 영어권까지 뒤져도 몇 편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읽는 한편으로 쓰기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드라큘라X조나단이 워낙 메이저라서 읽기만 하는 것도 벅차다. 사람들이 작작 좀 썼으면 좋겠다. 훌륭한 글이 너무 많다.(이렇게 써놓으면 진짜인 줄 알고 쭐래쭐래 와보는 인간 있겠지) 12. 이 팬픽 정말 좋았다, 하는 팬픽이 있다면? 반지 얘기는 지난번 문답에서 했으니까 다른 장르 얘길 하자면 해리 포터 팬픽 중에서는 루핀 주인공인 Wane 이라는 서역 팬픽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거 읽고 „이야, 해리 포터가 초메이저다보니 이런 명작들이 쏟아져나오는구나!“하고 해리포터 팬픽 아카이브 한 곳에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개피봤다.(…) 13. 읽었던 팬픽 중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조나단 놓친 드라큘라가 폭주하다가 제풀에 지쳐 조나단이 묵던 방 침대 위에 쓰러져 삽질하던 장면. 어디 나오냐고? 내가 쓸거다.(…) 내가 시즌 0을 쓰는 건 우선적으로는 „그 장면“을 내 식대로 써보고 싶어서지만 그 장면 이후에도 계속 써서 완결을 낸다면 위에 말한 게 쓰고 싶어서다. 14. 카페, 개인홈, 팬북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가? 팬북. 손에 쥐고 읽을 수 있는 게 좋다. 해외 사는 몸이라 직접 구해보진 못하지만. 15. 실력없는 사람들이 팬픽쓰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저기, 나 말고도 국내에 드라큘라X조나단으로 팬픽 쓰는 동지가 생겼는데 내가 그 동지를 실력 없다고 구박할 것 같진 않다. 열나 가난한 조나단이 돈 많고 싸가지 없는 드라큘라의 따귀를 때려 드라큘라가 ‚내게 이런 건 네가 처음이야’ 해서 둘이 사귀게 되었는데 조나단의 아기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미나가 나타나 둘의 사랑을 방해하고 결국 조나단과 드라큘라는 어릴 때 헤어진 이복형제였다는 게 밝혀지고 백혈병 걸린 드라큘라가 조나단의 품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조나단이 둘만의 사랑의 추억이 깃든 성벽 낭떠러지에 드라큘라의 유해를 뿌리며 끝나는 내용의 팬픽이더라도 난 그 아래다 „님하 최고삼. 다음편이 어서 보고싶어효“하는 감상을 달고 있지 않을까. 실제로 요약해놓고 보니 저 내용을 정말로 쓸 수 있는 작가라면 최고 소리를 들을만하다고 생각된다.(…) 아마추어의 멋진 점은 실력이 없어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할 수 있다는 거 아닌가. 누구나 쓰면 실력이 나아지기도 하니까 실력의 정도와 상관 없이 쓰는 건 좋은 일이다. 물론, 그 실력 없는 작가가 감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16. 이건 정말 재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팬북은? 재판 하면 돈 되나? 그럼 나랑 올순대 님의 The Two Minors.(…) 17. 팬북을 놓쳤을 때의 심정은 어떠한가? 있어야 놓치든 말든 하지. 한 번 놓쳐나 봤음 좋겠다. 18. 반면 당첨되었을 때의 심정은 어떠한가? 역시 경험해보지 않은 일은 답할 수 없다. 19. 소장하고 있는 팬북 목록을 쓰시오. 몇몇 반지 동인분들의 책들. 20. 이 팬픽은 꼭 제본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있다면? 제본 나와봤자 독일이라 못 산다.(먼산) 21. 이성팬픽에 대한 생각은? 내가 버닝하는 작품들은 거개 다 헤테로의 탈을 쓰고 있는 작품들이라 원작만으로도 충족이 되어 이성팬픽에 대한 욕망은 별로 없다. 단 하나 아이반호의 브와 길베르X레베카 빼고. 원작에서도 한 쪽의 일방적 삽질로 끝났던 커플이라 이 커플 정도면 이성 팬픽도 볼만하지 싶다. 물론 2차 저작자가 이 캐릭터들의 말빨을 제대로 살려놓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성 커플링 메인은 거의 안 읽지만 잘 쓰는 작가들은 여성 캐릭터도 설득력있게 구축하고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 중 하나의 사이드 커플링도 볼만하게 쓴다. 서역은 쓰리섬같은 것도 흔하다보니 남자 둘에 여자 하나, 혹은 스와핑같은 것도 가끔씩 봤다. 22. 동성팬픽에 대한 생각은? 워낙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말고 할 것이…;; 23. 팬픽 표절에 대한 생각은? 직접 관련되거나 목격한 적은 없다. 다함께 설정을 공유하는 팬덤의 특성상 아예 문장 자체를 몇 줄 이상 통채로 베끼지 않는 한 표절 유무를 가려내기도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24.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생각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반지 팬덤 떠난지가 오래되어 서역 쪽 지인들은 다 소식 끊기다시피 했다. 반면 한국은 역시 풀이 좁은 게 반지 팬덤 떠나도 엘리 팬덤에서 다시 얼굴 보고…;; 몇 분들은 나중에 딴 거 버닝해도 또 뵙지 싶다. 아니, 서로 낚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25.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팬픽 읽는 것을 싫어한다면? 우리 오빠는 팬픽 보신다. 인터뷰에서 브람 스토커가 써준 드라큘라를 읽으셨다고 밝혔다. 빅토르 위고가 쓴 레 미제라블도 읽으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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