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0의 세번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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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아아아아!!”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허를 찔린 안드레아스는 요란하게 팔을 휘두르며 ‘이걸 어째’라는 의사를 표현했다. 사방으로 물살이 튀었고 일부는 하커의 얼굴에도 끼얹어졌다. 여지껏 초점이 없던 회색 눈동자가 잠시 빠르게 움직였다. 그 사이 진정한 안드레아스는 그래도 설마 ‘그 잉글랜드 인’은 아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품고 이번에는 영어로 확인의 질문을 던졌다.

“너…변호사야?”

하커는 멀뚱하니 상대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 괴상한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세상에 “아레 요우 아 라브예르?”가 “Are you a lawyer?”임을 이해할 잉글랜드 인이 어디있겠는가. 안드레아스는 안드레아스대로 황당해졌다. 렌필드도 그렇더니 어째서 잉글랜드 놈들은 자기 나라 말조차 제대로 못할 정도로 저능하단 말인가. 답답해진 그는 다시 독일어로 돌아와 소리를 질렀다.

“변호사, 변호사 맞냐구. 블라드 님께 집 팔러 온.”

“맞는데요.”

“오흐 뮈 곧!!”

안드레아스가 의미한 것은 물론 “Oh, my god!!”이었다. 하커는 그 문장 역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기에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아 얌전히 있었다. 뱀파이어가 패닉에 빠지자 인간에 대해 발휘하던 지배력이 흐트려졌고 아마도 하커는 머지 않아 제정신을 찾았을 것이다. 안드레아스가 그의 양 어깨를 잡고 흔들어대며 정신 사나운 독일어로 횡설수설하지만 않았어도.

“미, 미안해! 내가 악의가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순전히 이보 아저씨에게 속아서…그 아저씨 말이 네가 꽤 뚱뚱하다고…다들 나 놀리는 게 재밌나봐, 어헝…하여간 집 많이 팔고…남자답게 블라드 님한테는 고자질하지마, 알았지? 그나저나 오늘 날씨 참 좋지 않아?”

안드레아스는 잉글랜드 인들이 날씨에 관한 화제를 매우 좋아한다고 영어 회화책에서 읽었고 그래서 날씨에 대한 언급이 자신을 향한 잉글랜드 인의 감정을 우호적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붙들려 흔들리는 와중에 하커가 한 생각은 다른 것이었다.

‘얼굴은 예쁜데 굉장히 정신 없는 여자애구나. 팔힘도 엄청 세다. 역시 여자는 미나처럼 차분하고 다소곳하며 품 안에 쏙 안기는 귀여운 맛이 있어야…’

안드레아스의 성별에 대해 기껏 얻었던 깨달음은 고 사이 까맣게 잊혀진 터였다. 안드레아스의 팔 힘은 더욱 강해졌고 하커는 흔들리느라 목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블라드 님께는 절대 얘기하면 안돼! 나 만났다는 얘기 꺼내지도 마! 아니, 아예 잊어버려! 너 나랑 본 적도 없는거다? 그냥 이대로 5분만, 아니 10분만 자.”

붙들고 있던 어깨를 놓고 안드레아스는 인간의 눈을 한 손으로 덮었다. 뭔가 말하려고 움찔거리던 인간의 입술이 동작을 멈추었다. 아직 손을 떼지 않은 채로 안드레아스는 명령했다.

“10분 있다가 눈 뜨면 나랑 있었던 일은 다 잊어버리는 거다. 아무 것도 기억하지마.”

몇 초 후 인간의 입술에서는 규칙적인 숨소리가 새어나왔고 안드레아스는 살그머니 손을 떼었다. 인간의 감은 눈 앞에 손을 몇 번 흔들어 정말 잠들었다는 걸 확인한 후 그는 욕조에서 빠져나왔다.

‘휴우, 큰일날 뻔 했네.’

안그래도 블라드 님은 그를 떼어버리고 잉글랜드로 가버릴 작정인 것 같았다. 만약 잉글랜드 인을 해쳐서 저택 계약을 무위로 돌릴 뻔 했다는 걸 아시면 절대로 그를 데려가주지 않을 것이다. 옷의 물기를 쥐어짜내며 그는 이보의 속임수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인의 정체를 알아낸 자신의 현명함을 찬양했다.

‘흐음…변호사였단 말이지.’

튜닉을 털며 그는 욕조 안의 잠든 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가 빠져나온 탓에 수면은 낮아져 인간의 가슴께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성장이 끝나지 않은 채로 뱀파이어가 된 안드레아스 자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작은 몸집 같았다. 안드레아스는 인간이 해외에서 일을 맡을 정도의 변호사치고는 꽤나 젊은 나이라는 데 우선 놀랐고 자신이 아까 그를 블라드 님의 정사 상대로 오인했었다는 데 두 번째로 어이 없어 했다. 얌전히 자고 있는 얼굴은 도발적인 구석은 전혀 없었고 순진해 보이기까지 했다. 남자는 커녕 여자랑도 경험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

안드레아스는 씩 웃었다. 저택 계약 건이 끝난 후 잉글랜드 인을 써먹을 곳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계약이 체결된 후라면 블라드 님도 잉글랜드 인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시겠지.

잉글랜드 인이 몸을 뒤척였다. 벌써 10분이 다 되어가는 모양이었다. 여기 저기 물이 튀어 미끄러운 욕실 바닥 위를 비틀거리며 안드레아스는 허겁지겁 욕실을 빠져나왔다. 아직 오후 시간이라 다른 뱀파이어들이 깨어있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꼐속>

1.시즌 0도 시리어스다.

2.안드레아스는 악역이다.

3.하커는 요염수다. 여왕수일지도 모른다. 순진한 드라큘라는 그의 색기에 홀려 몸을 버렸다.


믿으라, 믿으면 이루어진다!
by 하일트 | 2007/03/14 05:28 | 흡혈동인질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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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사보텐 at 2007/03/14 08:26
1번은 믿어도 3번은 못 믿겠어요<
왜 <6>일까 하고 고민하다가 아, 네이버로 갔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안드레아스 악역일진 몰라도 귀여운데요. 어찌된 게 하커 씨보다 마음에 들어버릴 것 같아 위험[...]
Commented by 해람 at 2007/03/14 15:47
저는 3번은 믿어도 1번은 못믿겠습니다(...)

안드레아스, 역할은 악역인데 어째 머리가 좀.. 걱정이되요<-
Commented by Innocent at 2007/03/14 17:42
안드레아스가 주문을 걸었다 쳐도 하커 지독하게 둔하군요=ㅁ=; 아니 전부터 알았지만 새삼 참(...)
참고로 전 1번이랑 3번은 일단(;) 믿겠는데 2번은 의심이 갑니다<-
Commented by 깜장 강아지 at 2007/03/14 18:40
정답은 4번, 위의 목록 3개는 이유없이 적었다~ 에 걸고 싶군요~
Commented by ymir at 2007/03/14 21:55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이 움직인다던데 전 믿음이 부족한가봅니다... orz
Commented by 하일트 at 2007/03/14 23:58
사보텐 님과 해람 님, Innocent 님을 합치면 온전한 두 사람 분의 믿음이 생겨나는군요. 기도회나 주최해볼까나요. 깜장 강아지 님, 저는 이 블로그를 만든 이래 단 한 번도 실없는 소리는 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진지) 그리고 ymir 님, 아무리 베드로도 세 번 부인했다지만 그래도 저 셋 중 한둘 정도는 믿어볼만하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ymir at 2007/03/15 00:43
...손목의 구멍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시면 제가 믿겠습니다.(...)
Commented by 하일트 at 2007/03/15 20:09
(이보 집사님이 매달았던 신부님의 옆구리를 보여드린다)
Commented by ymir at 2007/03/15 21:07
아아, 정말로 시리어스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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