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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위 계승자의 죽음은 남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었다. 마리 베체라를 황태자에게 데려다 주었던 마리 라리쉬는 이 사건으로 물주인 황태자를 잃었을 뿐 아니라 씨씨의 분노를 사 절연당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궁정에 더 이상 출입이 금지되었고 고모 씨씨는 다시는 그녀와 연락하지 않았다.
씨씨가 마리 라리쉬를 쫓아낸 것은 양날의 검이 되었다. 마리 라리쉬는 씨씨로부터 아무런 원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된 대신 씨씨가 시녀들에게 부과헀던 "황후의 사생활에 대해 떠들고 다녀서는 안된다"는 계율의 속박에서도 벗어났다. 이미 사치스러운 생활에 맛을 들인데다 남편과의 관계도 파탄난 그녀는 점점 재정난에 빠져들어갔고 그 때마다 프란츠 요제프에게 생활비를 지원해주지 않으면 황후에 대한 책을 펴내겠다고 협박했다. 처음에는 돈을 받고 잠잠해진 마리 라리쉬였지만 그 돈도 어느새 바닥이 났고 마리 라리쉬는 오스트리아 황실과 특히 고모 씨씨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련의 책들을 써냈다. 재정난에 몰려 펜을 놀린 그녀의 글의 어디까지가 믿을만한 구석이고 어디부터가 과장인지는 알기 힘들지만 씨씨가 악착같이 숨기려 했던 그녀의 개인적인 부분들은 그녀가 총애하다 쫓아낸 조카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루돌프의 죽음으로 빈 황태자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처음에는 프란츠 요제프의 셋째 동생 칼 루트비히였다가 (둘째 동생은 멕시코에서 죽었다) 1896 년 칼 루트비히가 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자 칼 루트비히의 아들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다음 황태자가 되었다. 황제의 사촌으로서 조용한 인생을 살다 갔을 뻔 했던 그는 차기 황제 후보가 됨으로써 인생 계획이 꼬이기 시작했다. 가장 골치아파진 것은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아직 총각이었던 그의 마누라 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점이었다. 황제의 사촌이야 독신으로 살다 가든 평민 여자와 눈 맞아 결혼하든 잠깐 스캔들 좀 일으키고 집안에서 욕 좀 먹으면 땡이지만 황태자의 결혼은 국가의 중대사가 된다. 큰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는 몇 번이나 조카를 높은 신분의 여성과 결혼시키려 압력을 넣었지만 그 때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튕기며 반항했다. 그리고 1900 년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저 여자예요!"하고 발견한 색시감은 - 아아, 이렇게 끔찍할 데가 - 자그마치 뵈멘의 백작 딸이라는 '천한' 여자였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차기 황제가 일개 백작의 딸같은 천출(...)과 결혼을 하겠다고 나서다니! 백작 가문 여자란 오스트리아 황실에서는 시녀 급이지 시녀들을 부릴 안주인 급은 아니었다. 도련님이 몸종이랑 결혼하겠다고 나선 꼴이라 황실과 프란츠 페르디난트 사이에서는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백작 따님이 아니면 죽어도 결혼 안한다고 뻗대는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백작 딸 따위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태자비가 될 수 없는 거라고 호통치는 프란츠 요제프 사이에서는 결국 이런 합의가 이루어졌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문제의 백작 딸 조피와 결혼해도 좋다. 하지만 조피는 황태자의 아내, 황제의 아내일 뿐 결코 황태자비, 황후라는 칭호를 얻을 수 없다.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합스부르크-로트링엔이 아닌 다른 성을 쓰며 제국의 계승권을 갖지 못한다. 이 말인즉슨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황제가 된다고 해도 황제의 적출인 아이들이 황태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이 굴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여 조피와 결혼했다. 그러나 황태자비의 칭호를 얻지 못한 조피는 황실의 퍼스트 레이디긴 커녕(그 때 황후 씨씨는 이미 죽은 뒤였다) 예식 때마다 황실 여자들의 맨 끝에 서 있어야 했다. 도련님이랑 결혼했다 해도 몸종 출신은 몸종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피는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낳았지만 그 아이들은 모두 합스부르크 - 로트링엔이 아닌 호엔베르크라는 성을 하사받았다. 하지만 조피와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에게 닥친 가장 큰 비극은 1914년 사라예보의 암살 사건이었다. 황실에서는 정식 황태자비로 인정받지 못했던 조피는 암살자에게만은 제국의 황태자비로 인정받았다. 남편 프란츠 요제프와 같은 자리에서 그녀는 암살자의 총탄의 희생양이 되었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아들 루돌프, 동생 칼 루트비히에 이어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라는 세 번째 후계자를 잃었다. 다음 황태자가 된 것은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큰 아들이 아닌 조카 칼이었고 칼은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된다. 현재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 오토는 마지막 황제 칼의 큰 아들이다. 한편 루돌프의 아내 스테파니는 장래의 황후에서 죽은 황태자의 미망인이 되었다. 남편의 지위에 여성의 지위도 좌우되는 궁정에서 그녀는 이제 한낱 외국 여자에 불과했다. 남편이 남기고 떠난 딸 Erzsi는 시아버지 프란츠 요제프의 후견을 받게 되었고 그녀 자신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했던 스테파니는 딸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오스트리아 궁정에는 이제 그 곳을 피해 도피 여행을 다니는 여자가 둘이 되었다. 황후 엘리자베트와 전 황태자비 스테파니. 스테파니는 자신이 오스트리아 궁정에서 필요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1900 년, 마이어링의 사건 11년 후 스테파니가 헝가리 출신의 어느 백작과 재혼하면서 그녀와 오스트리아 황실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졌다. 백작이란 프란츠 페르디난트 건에서도 볼 수 있듯 황자나 공주들의 신분에는 어울리지 않는 천한 것(...)인데 이 때문에 스테파니는 부왕인 벨기에 왕으로부터 역정을 샀다. 벨기에와도 오스트리아 궁정과도 인연이 끊어진 스테파니는 새 남편을 따라 헝가리의 영지로 이주해 조용히 살았는데 그것은 스테파니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새 남편을 사랑했고 영지를 둘러싼 조용한 자연을 사랑했다. 그리고 때때로 시끄러운 빈으로부터 새 황태자 부부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가 찾아왔다. 스스로 빈의 아웃사이더였던 스테파니는 자신의 후임자이면서도 후임자가 아닌 조피를 따뜻하게 맞아준 유일한 황실 연고자였다. 1914 년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가 살해될 때까지 스테파니는 이 부부와 우정어린 관계를 유지했다. 루돌프와 스테파니에서 태어난 Erzsi가 만약 남자아이였다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태자가 되었고 만약 사라예보의 암살 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황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Erzsi는 계승권이 없는 여자 아이였고 이제 아빠 없는 아이로서 할아버지의 손에 맡겨졌다. 다섯 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손녀가 마냥 안쓰러웠던 프란츠 요제프는 Erzsi에게 흠뻑 사랑을 쏟아부었다. 역시 프란츠 요제프는 여자들에게만 무른 타입이었나 보다. -_-;; 루돌프, 너도 딸이었으면 아빠 따위 전혀 무서워할 필요 없었을텐데. 반면 Erzsi와 어머니 스테파니의 사이는 나빴다. 스테파니는 Erzsi를 거의 내팽개쳐 두었고 스테파니가 재혼한 후 모녀 사이에는 연락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나빠질수록 Erzsi는 죽은 아버지를 우상시하기 시작했다. 죽은 아버지란 잔소리를 하지도 호통을 치지도 꼰대같은 사상으로 자식들의 삶을 힘겹게 하지도 어머니를 학대하지도 않는 법이어서 Erzsi는 자기 취향대로 아버지를 상상하며 숭배할 수 있었고 해마다 아버지의 기일이면 아버지와 그의 <연인> 마리 베체라를 기렸다. Erzsi는 1902년 황제의 손녀라는 신분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그저그런 집안의 귀족 남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Erzsi가 황제의 후계자가 될 것도 아니어서 이 결혼에는 딱히 딴지가 없었다. 진짜 문제는 Erzsi와 남편이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황실이 몰락하고 1919 년 부부는 별거에 들어갔고 1948 년에 완전히 이혼했다. 1921년 아직 별거 중이던 Erzsi는 좌파 정당이던 사민당의 정치인 레오폴트 페츠넥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1925 년 그녀는 직접 사민당원이 되었고 '붉은 공주님'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1948년 전남편과의 이혼 후 페츠넥과 결혼함으로서 남자로 태어났던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제가 되었을 이 공주님은 '페츠넥 부인' '페츠넥 동무'가 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우두머리인 마지막 황제 칼과 그의 자손들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권리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아 오스트리아에서 추방당해 유럽을 떠돌아다니는 동안 사민당원으로서 훌륭한 공화주의자가 된 Erzsi는 고향땅에 머물며 남편과 행복하게 살았고 빈에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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