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모차르트가 쓴 거나 보자 - 돈 지오반니 잡담 <1> 현재는빠순

내가 원래 포스팅하려던 건 따로 있었어. 내가 블로그 떠나 마이너폴리스에 처박혀 있는 동안 진짜 모차르트가 쓴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빨았거든. 우리 오빠한테 낚인 것도 원래는 돈 지오반니 덕질을 해볼까 해서 돈 지오반니 자료들을 찾아보다 우리 오빠가 걸려들었는데 헐 뭐야 노래 존나 못하고 연기도 이상해하고 까면서 근데 존나 이쁘다하고 빨다가 까다 빨다 까다 빨다하다 뇌가 이상해져서 낚인 거야. 그래서 돈 지오반니 관련해서 할 말이 좀 많아. 근데 그 얘길 하려다 엠팍 불펜에서 내 안의 뮤덕을 깨우는 글을 봐서 요 며칠 추억 여행 한 거. 다시 원래 버닝으로 돌아가야지.

이 블로그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이 오페라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텐데 일단 머글에게 맞춰 써볼게. 예전에 우리 오빠 입덕 경로에서 얘기했듯 돈 지오반니는 이탈리아식 이름이고 원래 스페인 본토 발음으로는 돈 후안, 전설적인 바람둥이야. 얘한테는 레포렐로라는 이름의 따까리가 하나 붙어있고. 예전에 마이너폴리스에 올렸던 영업글을 발췌복붙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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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지오반니가 어떤 인간인지 가장 잘 묘사해주는 곡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돈 지오반니 본인이 아니라 그의 하인 레포렐로가 부릅니다. 돈 지오반니가 한 때 데리고 놀다 버린 여자들 중 돈나 엘비라가 있습니다. 돈나는 스페인 어로 여성에게 붙는 경칭이니까 원래 이름은 엘비라고요, 하여간 돈나 엘비라는 돈 지오반니의 구여친인데 아직 자신이 구여친이 되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지부조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돈 지오반니에 대한 애증에 불타고 있는데 사실 애증이라는 게 아직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튄 돈 지오반니를 증오하면서도 그를 찾아 다시 만나면 그의 마음을 되돌릴 수도 있을 거라는 미련한 희망을 품고 있어요. 그녀는 돈 지오반니가 단지 평범한 똥차인 줄 알아서 잘 수리하면 타고 다닐만 할 거라고 믿죠. "그 새끼는 개새끼지만 어쨌거나 내 개야"라는 게 돈나 엘비라의 입장이에요.
 
하지만 진짜 비참한 사실은 뭐냐면요, 정작 다시 만났을 때 돈 지오반니는 돈나 엘비라가 자신이 옛날에 버렸던 여자인 줄도 못 알아보고 그녀를 꼬시려 들어요. 그도 그럴 것이 돈 지오반니에게 돈나 엘비라는 자신이 상대한 네 자리 수(!)의 여자들 중 하나일 뿐이어서 얼굴이고 뭐고 다 기억 속에서 사라졌거든요. 차라리 돈 지오반니가 그녀를 보자마자 찔려하며 도망쳤으면 덜 비참했으련만 그녀의 존재 자체를 까먹은 돈 지오반니는 그녀에게 새로 껄떡대다 돈나 엘비라가 분노를 표출하며 욕질을 하니 그제야 시발 좆됐다고 깨닫습니다.
 
돈 지오반니는 시다바리 레포렐로에게 곤란한 구여친의 뒷처리를 맡기고 튑니다. 그리고 레포레로는 이 순진한 여자의 헛된 꿈을 깨주기 위해 주인의 정체를 폭로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일명 '카탈로그의 노래'라 불리는 노래입니다.
 
기억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는다는 말은 바람둥이 행각에도 적용됩니다. 비록 여자들의 얼굴은 기억도 못하지만 자신이 여자들을 이마아아아안큼이나 따먹었다는 수치적 진실만은 남기고 싶었던 그는 레포렐로에게 그 여자들을 카탈로그화 하여 명단을 적어두라고 명했더랬습니다. 레포렐로는 바로 그 명단이 적힌 책을 들고 돈나 엘비라에게 노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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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클립에서 레포렐로 역을 연기하는 베이스바리톤은 바로 내가 그 동안 올린 돈 카를로 클립들에서 펠리페를 연기하신 푸를라네토 옹이셔. 펠리페 때랑은 느낌이 퍽 다르지?ㅋㅋㅋㅋㅋ 마이너폴리스에 썼던 글 이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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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이제 돈 지오반니가 어떤 인간인지 아시겠죠. 남자가 양다리, 세 다리, 혹은 문어 다리 정도를 걸치면 그건 평범한 개새끼에 똥차입니다. 하지만 돈 지오반니처럼 여자의 인종과 나이와 종교와 국적과 계급과 재산과 정치색과 사상적 빛깔과 집안과 심지어 외모마저도 개의치않고 평등하게 껄떡대면 그건 장인 정신이고 평범함을 거부하는 대안적 삶의 방식이며 이 시대의 마지막 페미니스트이자 전인류의 절반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입니다.(...) 예수나 석가모니의 절반 쯤은 되는 위인임. 아무리 못생긴 여자라도 껄떡대고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한 번 자는 데 성공했으면 버리는 공명정대한 남자기도 하고요.

옛말에 사람을 하나 죽이면 살인자지만 무수히 죽이면 영웅이 된다고 했죠. 다시 말하지만 양다리, 세다리, 문어다리까지는 개새끼지만요 돈 지오반니 쯤 되면 그건 걔가 원래 그리 생겨먹은 거고 일종의 자연재해같은 거라서 여자가 알아서 피하는 게 낫습니다. 밀려오는 쓰나미 앞에서 "너는 무슨 억하심정으로 인간들에게 이리 큰 피해를 입히느냐?"라고 규탄해봤자 아무 소용 없고 도망가는 게 상책인 거랑 같은 원리임. 욕 해 봤자 입만 아픔.
 
'카탈로그의 노래'는 레포렐로의 독창이지만요, 돈나 엘비라 역 가수의 리액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돈나 엘비라는 처음에는 레포렐로의 말을 믿기 싫어하다가 그래도 자기 눈으로 확인은 해봐야겠다고 반신반의하며 직접 명단을 확인하고 마침내 내가 만난 게 실은 한낱 똥차가 아니라 자연재해였구나 하고 정줄을 놓습니다. 요 믿기 싫음 -> 반신반의 -> 멘붕의 타이밍과 표현이 돈나 엘비라 역 가수들마다 조금씩 달라서 비교하는 맛이 있죠. 노래는 레포렐로 혼자 부르지만 그 노래에 돈나 엘비라가 적절히 반응을 보여야 노래의 효과가 더 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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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카탈로그의 노래에서 "치마를 걸쳤기만 하면 제 주인님이 무엇을 하시는지는 아씨도 잘 아시겠지요"라는 가사를 부르며 레포렐로가 주인의 여자였던 돈나 엘비라를 추행하는 게 보이지? 일반적인 카탈로그의 노래 연출에서는 다 저 대목에서 레포렐로가 돈나 엘비라를 추행해. 수위와 동작은 프로덕션마다 세세하게 달라지지만. 저 장면에서 레포렐로는 돈 지오반니에게 빙의하는 거야. 본래 신분이 낮은 레포렐로는 돈나라는 경칭이 붙는 엘비라를 감히 넘볼 처지가 못 돼. 하지만 저 노래를 부르면서 마치 자신이 주인인 양 지오반니에게 빙의한 레포렐로는 잠시나나 엘비라에게 남자로서의 권력을 발휘해. 저 찰나의 순간 신분은 사라지고 젠더만 남은 거지.

'빙의'는 지오반니와 레포렐로의 주종 관계의 중요한 키워드야. 돈 지오반니는 다 가진 알파 메일이야. 얜 귀족이고 돈도 많고 정력도 끝내주고 네 자리의 수의 여자들을 후렸으며 아무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워. 남자의 로망이지. 반면 하인인 레포렐로는 베타 메일이나 감마 메일도 못 되고 저 알파벳 중후반 어디께쯤 자리한 메일이야. 얜 신분도 낮고 돈도 없고 잘 나가는 주인의 뒤치닥거리나 하는 신세고 남자로서 매력도 별 볼 일 없고 여자운도 그냥 그래. 주인이 워낙 잘 나가니까 상대적으로 자기가 더 비참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겠지. 그리고 얘도 자기 주인이 나쁜 놈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아. 지오반니는 바람만 피우고 다니는 게 아니라 그 와중에 사람도 죽이고 사기도 치고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거든. 그래서 레포렐로는 주인을 혐오하고 시기하고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주인에게 동일시도 해. 흔한 노예 근성이지. 주인이 반항하기에는 너무 강한 존재일 때 노예들은 주인의 권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기도 그 권위를 빌려 바깥 세상에 으스대고 싶어하잖아? 레포렐로는 주인이 남자로서 거둔 성공에 빙의해 여자인 돈나 엘비라에게 위세를 잠시 부려.

그리고 레포렐로가 작성한 저 명단은 빙의의 중요 매개체야. 여자야 돈 지오반니가 따먹지만 그걸 기록하는 건 레포렐로야. 레포렐로가 없으면 돈 지오반니의 업적은 잊혀질 뿐이야. 레포렐로는 주인의 엽색행각을 기록함으로써 자신도 거기에 동참하고 빙의하는 거야. 즉 저 명부는 레포렐로에게 부심의 원천이지. 돈 지오반니와 레포렐로의 이 관계를 잘 보여주는 프로덕션 하나 소개할게.



이건 우리 오빠가 돈 지오반니, 그리고 내 세컨드인 테어벨이 레포렐로를 뛴 프로덕션의 샴페인의 노래야. 예전에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었지. 돈 지오반니가 잔치 뻑적지근하게 열어 된장질하면서 여자 열 명 따먹을 거라고 의기양양해하는 노래. 가사에는 샴페인이라는 단어가 안 나옴에도 이 노래가 흔히 샴페인의 노래라 불리는 건 자뻑에 찬 돈 지오반니의 신난 감정과 진짜 샴페인의 거품처럼 부글부글 빠르게 끓고 있는 음들이 그 제목에 매우 잘 어울려서겠지.

이 클립 초반에 레포렐로는 주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떨어져있고 레포렐로가 애지중지 들고 다니는 명부는 돈 지오반니의 앞에 떨어져있어. 왜냐면 바로 이 직전에 레포렐로가 주인에게 좀 화가 날만한 정황이 있었거든. 하지만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레포렐로는 금세 주인에게 매혹돼. 예전에 마이너폴리스에 올렸던 감상을 또 복붙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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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어벨의 레포렐로는 여기서 주인에게 만족한 덩치 큰 애견 같습니다. 테어벨의 레포렐로는 난롯가에 엎드린 채 주인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기울이며 느긋하게 꼬리를 흔드는 대형견처럼 주인의 자뻑 가득한 노래에 취해있다가 결국 주인에게 동화되어 뛰어가요. 주인의 자뻑과 쾌락과 도취에 동참하기 위해서요. 마치 정복자 황제를 원정길에 동행하는 역사가처럼 레포렐로는 돈 지오반니의 모든 정복을 지켜보며 기록해왔고 그게 그가 주인에게 동일시하는 방식이었어요. 하지만 돈 지오반니는 레포렐로를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아요. 그는 여자들의 명단이 적힌 카탈로그를 레포렐로에게 줄듯 말듯 하며 레포렐로를 가지고 조련합니다. 그리고는 ㅋㅋㅋ거리며 레포렐로 없이 뛰어가버리죠. 레포렐로는 주인이 버린 명부를 애지중지 챙겨듭니다. 그 명부는 돈 지오반니에게는 별 것 아니지만 레포렐로에게는 별 것입니다. 돈 지오반니는 그 명부 없이도 얼마든지 여자들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레포렐로는 그게 있어야만 주인의 정복에 동참이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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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칼은 프로이트식으로 대표적인 남근상징물 중 하나잖아. 그래서 저 노래 부르면서 돈 지오반니가 여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 즉 여자들의 상징을 칼끝으로 뒤적이는 게 되게 성적인 암시가 짙게 느껴지더라.

하여간 레포렐로는 돈 지오반니에게 빙의하는데 돈 지오반니는 레포렐로에게 빙의하지 않아. 돈 지오반니에게 레포렐로는 하인일 뿐이고 이용 대상일 뿐이고 여차하면 자기 대신 죽어줘야 하는 놈일 따름이야. 그리고 여기서 돈 지오반니와 레포렐로의 관계의 긴장감이 나와. 그걸 잘 보여주는 클립 또 하나 가져올게.



이건 레포렐로가 정말로 돈 지오반니 때문에 맞아죽을 뻔한 다음이야. 그래서 레포렐로는 주인에게 상당히 화가 나있지만 돈 지오반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레포렐로야 화가 났든 말든 돈 지오반니는 자기가 여자 만난 얘기나 자랑하고 싶어해. 그걸 기록하는 게 레포렐로의 일이니까 레포렐로는 일단 들어줘. 그런데 돈 지오반니가 이번에 꼬실 뻔하다가 놓친 여자는 레포렐로가 공략하던 여자였어. 레포렐로를 전혀 자신과 동등한 수컷이라고 인정 안 하는 돈 지오반니는 레포렐로의 여자도 전혀 개의치 않고 꼬시려고 했던 거야. 진지하게 화가 난 레포렐로는 만약 그 여자가 내 아내였어도 꼬셨을 거냐고 추궁하는데 돈 지오반니는 "네 마누라면 더 좋지!"하면서 웃고 자빠졌어. 지오반니와 레포렐로는 이런 관계야.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전혀 다르고 그래서 레포렐로의 돈 지오반니에 대한 애증이 나오지.

여기까지 쓰면 읽어온 사람들은 다 '아 하일트 이 새끼가 이번에는 또 돈 지오반니랑 레포렐로로 호모 커플링 하자고 약팔고 있구나'하고 감이 올 거야. 오해야, 오해. 내가 작년 이맘때 돈 지오반니X레포렐로를 밀고 그걸로 팬픽도 썼던 건 사실인데 내가 지금은 완전히 펠리페랑 로드리고 라인에 넘어갔거든? 똑같은 애증 관계라도 그쪽이 훨씬 내 취향. 그래서 호모 커플링은 됐고 난 그저


웃다 자빠진 우리 오빠 돈 지오반니의 자세가 존나 꼴리길래 이 짤이나 같이 보자고 가져오고 싶었어. 근데 왜 돈 지오반니가 자빠져서 이러고 있는지 설명을 해야 하잖음. 그래서 지금까지 설명한 거.

조금 더 늘어지는 뮤덕 모드 뮤지컬 잡담

아랫글까지만 쓰고 뮤덕 모드 오프하려고 했는데 아마데와 콘스탄체의 대립 복선으로 들어있는 장면도 소개해야 할 거 같아서.

먼저 이게 라스무스가 주연한 콘서트 버전에서 볼프강과 콘스탄체의 이중창.



그리고 이건 한국 공연 같은 장면. 아마 일본팬이 찍은 밀캠인 듯?



보다시피 도입부에서 독일어판은 볼프강의 대사가 "나도 알아, 여자에게 허우적대라고 신이 내게 재능을 내려준 게 아니라는 걸."하고 말을 해. 원래는 독어판도 이 다음에 "하지만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마음씨를 가졌어"라는 대사가 더 나오는데 콘서트라서 잘린 거 같더라. 반면 한국어판에서는 "나도 알아" 다음에 "여자에게 허우적대라고 신이 내게 재능을 내려준 게 아니라는 걸."이라는 대목이 빠져있어. 이게 작지만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게 되는지 보임?

독일어판에서 볼프강의 도입부 대사는 변명이야. 그 따위 인간적인 감정에 휩싸여서는 안 된다고 콘스탄체와의 관계를 반대하는 아마데에게 볼프강이 변명하는 거야. 나도 신이 내린 내 사명이 여자랑 놀아나는 데 있지 않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난 그녀가 좋다라고. 하지만 한국판에서는 "나도 알아,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마음씨를 가졌어."로 넘어가면서 마치 아마데도 콘스탄체를 좋아하고 그 사랑을 지지하는 듯한 인상을 줘.

그리고 이렇게 도입부의 한 대사 삐끗으로 중간에 아마데의 행동도 의미가 바뀌어. 콘스탄체가 나타난 후 아마데는 볼프강을 잡아 끌며 그의 주의를 콘스탄체에게서 돌리려 하지만 볼프강은 아마데를 밀쳐버려. 독일어판에서는 이게 아마데가 볼프강의 연애질을 방해하기 위해서야. 내가 예전에 대본을 읽었던 기억으로는 독일어판에서는 콘스탄체와 볼프강이 완전히 헬렐레해서 뒹굴 때 아마데가 문을 열어서 콘스탄체의 가족이 들이닥치게 만들어. 아마데는 그 사랑을 계속 방해하려 한 거지. 결과적으로는 아마데의 의도와는 반대로 그 때문에 콘스탄체와 결혼하게 되지만. 근데 내가 가진 캠버전 영상들에서는 초점이 계속 볼프강에게 맞춰져 있어서 아마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정말로 실제 공연에서도 아마데가 콘스탄체의 가족들을 들어오게 만드는지는 확인 불가능.

한국어판에서도 아마데가 볼프강과 콘스탄체를 훼방하긴 해. 한국판이 참 웃기는 게 말얔ㅋㅋㅋ보면 나름 콘서트 버전 참조해가면서 넣을 동작은 넣고 있거든?ㅋㅋㅋㅋㅋㅋ근데돜ㅋㅋㅋㅋ구멍이 뻥뻥 뚫림ㅋㅋㅋㅋㅋ독일어판에서는 아마데가 볼프강을 방해하는 게 사랑에 반대한다는 뜻이었지만 한국어판에서는 뭐 같음?ㅋㅋㅋㅋ그냥 애가 어른들 사랑을 이해 못해서 눈치 없게 끼어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음?ㅋㅋㅋㅋ내가 사전지식 없이 한국어판을 봤다면 그리 해석했을 거 같음ㅋㅋㅋㅋㅋ최종 보스 아마데의 위엄은 이렇게 안녕히...(손흔들)그리고 아마도 이 뒤에 아마데가 콘스탄체를 미묘하게 견제하는 장면들도 한국어판에서는 의미를 잃겠지.

저 "신이 여자에게 허우적거리라고 내 재능을 내려준 건 아니라는 걸"이라는 대사가 한국어판에는 대체 왜 빠졌는지 이해를 못하겠음. 저 대사 한 줄이 그리 힘든 것도 아니고 어차피 말로 하는 거니까 노래에 음절 맞춰야 할 필요도 없고 왜 뺀 거임? 당위성이 뭐임? 그리고 저 대사 빼서 아마데의 역할을 바꾸고 싶었으면 아마데가 볼프강 훼방 놓는 장면은 또 왜 그대로 뒀음? 귀여우라고? 대체 한국 제작진은 아마데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임?

이 대목에서 노래는 김준수 씨가 라스무스보다 낫지. 사랑 노래의 달달함을 잘 살리는 거 같음. 질러대는 노래가 아니어서 성량 부족한 거 티도 안 나고. 내가 한국판 영상 이거 저거 보다가 아 그래도 김준수 씨가 가수하던 가락이 나오는 구나 싶었던 게 이 장면이었어. 반면 연기는 라스무스가 확연히 위야. 표정이랑 몸 쓰는 것부터가 다르지. 내가 한국판 모차르트!가 대체 어땠길래 그 욕을 먹나 싶어서 영상 찾아볼 때 대부분이 김준수 씨 버전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연기가 확연히 모자라더라고. 일단 쓸 줄 아는 연기 기술이 한정됐어. 좀 더 대놓고 말하자면 발연기. 가끔 몰입이 괜찮을 때는 있는데 캐릭터에 몰입하는 거랑 그래서 자기 몸을 도구삼아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 건 다른 영역이잖음?

내가 며칠 전에 김준수 씨 뮤비 포스팅까지 하고 나서 연뮤갤 망명지로 쓰이는 디씨 모 갤러리에 가서 김준수 씨 볼프강 역 노래 연기 까면서 혹시 연기는 괜찮다는 평 최초 주장자가 나였냐는 글을 쌌어. 그러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병신글 썼다고 내가 까였는데 분위기 파악 못한 거야 내 잘못이니까 어이구 내가 왜 그 글을 쌌을까 흑역사 하나 더 적립했네 쪽팔려하며 하이킥 몇 번 하고 나만 병신으로 끝낼 일이었거든? 근데 시발 김준수 씨 팬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내 글을 신고 먹이는 바람에 삭제가 됐어. 자주 있는 일이래.

근데 사람 마음이 말이야, 걍 화풀이성으로 찍 욕하고 끝낼 것도 아예 말 못하게 입을 틀어막히면 존나 진지하게 각잡고 떠들고 싶어지지 않냐?ㅋㅋㅋㅋ나도 원래는 그냥 거기서 좀 까다 말 작정이었는데 삭제 크리 당하니까 마치 존나 비교 영상 갖다 놓고 내가 왜 김준수 씨가 노래 연기 둘 다 볼프강으로서 모자라다고 생각하는지, 왜 뮤콘 영상을 보면서 웃었는지 논문 포스팅을 해야 할 것 같은 오기가 들었단 말얔ㅋㅋㅋㅋ

근데 또 문제가 뭐였냐면ㅋㅋㅋㅋ내가 뮤배 김준수 씨 까기 이전에 한국판 모차르트! 번안 연출 까고 나는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오페라든 극예술을 총괄하며 책임지는 건 연출이라는 입장이거든? 이게 오페라 쪽에서는 마이너한 의견이긴 한데(클래식 쪽은 작곡가가 왕 대접을 받는지라 연출이 튀는 프로덕션은 곧잘 전통주의자들에게 욕 먹음) 하여간 내가 극예술 장르 보는 철칙은 그렇다보니 한국판 영상을 다시 보면서 연기자 김준수 씨는 뒷전이 되고 번안과 연출에 대한 분노가 되살아나더라곸ㅋㅋㅋㅋㅋ아, 사실 한국판 영상들을 본지는 좀 됐어. 다만 탈덕 중이고 다른 덕질을 하고 있던 차라 그냥 혼자 욕 좀 하고 말았지 굳이 포스팅까지 할 생각은 안 했음. 묻어뒀는데 엠팍 불펜의 글이 옛 기억과 내 안의 뮤덕을 일깨운 거임.

그렇게 묻혀있던 분노가 되살아났는데 또 문제의 갤러리에서 닥눈삼을 위해 옛글 복습을 하다보니 또 모차르트!가 주어 불분명하게 까이고 있데? 그랬더니 분노에 이어 "나의 모차르트!는 이러치 아나!"라는 원통함 또한 되살아나면서 나온 게 이 포스팅 시리즠ㅋㅋㅋ이거 쓰느라 파르르 떨면서 방에 틀어박혀 있었더니 같이 사는 사람이 내 방문 두드리면서 너 괜찮냐고 물어봄ㅋㅋㅋㅋ오늘 내가 지나가는데 또 물어봄ㅋㅋㅋㅋㅋ

한국판 번안과 연출에 대해 한바탕 마이너스 버닝을 하고 났더니 이번달 마이너스 버닝력은 소진한 거 같아 뮤배 김준수 씨에게 마이너스 버닝하는 건 훗날로 미뤄둠. 지금은 살풀이 결과 기분이 좋아져섴ㅋㅋㅋㅋ세상이 아름다워 보임ㅋㅋㅋㅋ또 일반 커뮤니티에서 내 안의 뮤덕을 일깨우는 사건이 벌어지면 그 때 까겠음. 근데 내 안의 뮤덕이 또 깨어나더라도 그거부터 먼저 하진 않을 거야. 아마 라스무스의 콘서트 영상에 한국어 자막 붙이는 걸 먼저 하겠지. 이번에 독일어판 한국어판 비교하느라 들여다보았더니 새삼 내 세컨드였던 라스무스가 물건이구나 싶더라고. 내가 얠 핥던 게 몇 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얘 저 콘서트 전에는 볼프강 연기한 적이 없었을 거야. 저 콘서트가 얘의 첫 모차르트! 프로덕션이었어. 그런데 저만큼 연기 퀄 뽑아냈으면 잘한 거지. 초대 볼프강 가소이 롬달도 연기파였지만 카메라가 얼굴만 줄창 따라다녀서 연기 핥기에는 무리가 있고 함부르크 판의 마틴 파슁은 역시 내 세컨드였지만 몸 쓰는 게 라스무스보다 좀 떨어지는 거 같더라.

나한테 라스무스 콘서트 영상도 풀버전이 있어서 사실 그거 자막 붙이고 싶은 마음이 동했는데 그러다 다시 뮤덕 되면 끝장이라고 존나 억눌렀음ㅋㅋㅋㅋ왜냐면 내가 다시 뮤덕이 되었다가는 온 동네 돌아다니며 주어 불분명하게 모차르트! 까는 사람들에게 고나리를 시전하고 트랙백으로 논문 결투를 신청하고 지도 쪽지를 날리면서 피곤하게 만들 거란 말임ㅋㅋㅋㅋㅋ아 물론 독일어판 모차르트! 도 까도 됨ㅋㅋㅋㅋ세상에 까면 안 되는 신성불가침 작품이 어딨음ㅋㅋㅋㅋㅋ암만 남들이 좋대도 내 눈에 구려보이면 까는 거지. 다만 주어가 불분명한 게 싫은 거야, 나는.

내가 뮤덕질을 탈덕한 이유는 대략 세 가지야. 우선 쿤체 레버이 콤비의 레베카 후속작인 마리 앙투아네트도 내 기대에 못 미친데다 쿤사마 스타일이 좀 변한 게 느껴져서 내가 더 이상 빨 작품이 없어졌고(이 콤비 작품 말고도 좋아하는 뮤지컬들은 있지만 라이트하게 핥는 거고 덕질까진 안 하거든) 뮤배 본진인 예습 삼촌도 결혼으로 내 유사 연애를 끝장내고 무대를 떠나는 바람에 배우 빠순질도 못해먹게 생겨서 낙이 없는 판에 한국 초연 후 모차르트!까지 까여서 존나 쉴드를 쳐야하는 판임. 좋은 일은 없고 피곤한 일만 있는데 배겨낼 사람이 어딨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사람 심리지. 그래서 전 그냥 나갈래요하고 탈덕했엉. 그리고 모차르트! 독일판 영상들도 다시 안 봤음. 2 년 넘게 구석에다 처박아놨음.

그러다 이번에 다시 보니까 시발ㅋㅋㅋㅋ좋긴 역시 좋더랔ㅋㅋㅋㅋ오랜만에 '어떻게 제 그림자를 떨칠 수 있을까'를 듣는데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콱콱 박히면서 찌르르...게다가 다시 본 라스무스도 반가워서 아직도 빨 게 남긴 남았구나 뮤지컬은 역시 멋진 거야하면서 뮤덕질을 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역시 진지하게 다시 이 바닥에 뛰어들었다가는 내 정신 건강이 위험할 거 같음. 동거인이 맨날 날더러 괜찮냐고 물어볼 거 같음. 이번에 모차르트! 세번째로 올라온다며? 나는 아마데를 피해 도망가는 볼프강처럼 뮤덕질을 피해 도망가야함. 그리고 로드리고랑 펠리페를 결혼시켜야지, 랄라.

그나저나 예습 삼촌은 뭐하냐. 이젠 자작곡이라도 좋으니까 걍 노래라도 해라 싶다.

모차르트! 판본 비교 마지막 - 마술 피리 작곡 장면 뮤지컬 잡담

마지막으로 비교해보는 판본들, 마술 피리 작곡 장면이야. 먼저 함부르크 판. 귀찮으니까 더 이상의 자막은 없다. 하지만 짧아.



모차르트가 마술 피리 작곡 의뢰를 받아들였을 때 콘스탄체가 마지막으로 남편을 찾아왔다가 정 떨어져서 떠나는 대목이 한국판에도 있었지. 여기 함부르크판에도 있었어. 이게 바로 그 다음.

함부르크 판에서는 그 후 어떻게 이어지냐면 볼프강은 그래도 마누라를 뒤따라가려고 해. 근데 쉬카네더가 막아. 우리 예술가들은 여자 따위에게 얽매여서는 안 된다며 쉬카네더는 볼프강에게 새 여자들을 붙여줘. 아마도 창녀들이겠지? 쉬카네더가 붙여준 창녀와 함께 볼프강은 무대 뒤로 뒹굴러 가.

이 때 볼프강은 모든 인간적 유대를 잃은 상태야. 아버지는 죽었고 누이와는 소원해졌고 그가 가장 사랑했고 그를 아마데에게서 구해줄 가능성이 있었던 콘스탄체는 그를 떠났어. 얘 옆에 있는 사람은 창녀 뿐이야. 얜 사회적으로 죽었고 고립됐고 얘가 감정 쏟을 인간적 대상은 아무도 없어.

볼프강을 그렇게 인간들에게서 떼어내는 데 성공한 후 아마데는 마술 피리의 작곡에 착수해. 인간 볼프강이 창녀와 뒹구는 동안 천재 아마데는 불멸성의 상징인 두개골 위에 앉아 창공을 바라보며 예술혼을 불태워. 무대에 볼프강은 없고 아마데만 있어. 볼프강은 아마데에게 완전히 패했거든.

이렇게 모차르트의 최후의 걸작들 중 하나가 탄생하고 드디어 인간에게 승리를 거둔 천재성을 찬양하기 위해 앙상블이 등장해 '모차르트, 모차르트'를 불러. 이 노래는 볼프강이 아니라 아마데에게 바쳐진 거야. 무대 위에는 아마데 뿐이니까. 후세의 사람들은 인간 볼프강에게는 관심이 없어. 그저 천재에게만 관심있을 뿐이지. 그들은 무대 뒤의 진짜 볼프강은 볼 수 없어. 그리고 모차르트, 모차르트가 끝난 뒤 이미 고립된 볼프강은 아마데에게 살해당함으로써 소멸해. 죽기 직전 볼프강은 아마데에게 소리질러. 난 네게 모든 걸 바쳤다고. 유년이랑 가족이랑 사랑이랑...그게 이 작품 한줄 요약. 인간 볼프강이 어떻게 천재 아마데와 갈등하다 인간의 삶을 이루어주는 것들을 하나씩 잃으며 잡아먹혔는가.

이 부분의 한국 버전 영상은 구하지 못했다. 그치만 후기로 대충 어떻다는 얘기는 들었지. 한국판에서는 볼프강이랑 아마데랑 함께 마술 피리를 작곡한다며? 그 소리 들으니까 짚이는 게 있더라. 아마도 한국 제작진은



이걸 봤겠지. 헝가리판에서는 아마데와 볼프강이 함께 마술피리를 작곡해. 근데 그건 헝가리판이 독일어판과 설정이 완전 달라서야. 앞에도 누누이 썼듯 헝가리판에서는 볼프강이 자진해서 아마데를 받아들이고 운명에 순응한다고. 여기서는 아마데와 볼프강이 독일어판에서만큼 극렬히 갈등을 벌이지 않아. 애초에 아마데가 볼프강보다 우위에 있거든. 어쩌다 갈등이 벌어져도 볼프강은 결국 아마데의 지배를 받아들여. '아마데와 볼프강이 함께 무대에서 마술피리를 작곡한다'는 헝가리판의 설정은 헝가리판만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거야.

근데 이걸 헝가리판과는 설정이 다른 한국판에서 그냥 가져오면 어떡함? -_- 방금 전까지 화기애애하게 같이 작곡질하다가 왜 아마데가 볼프강을 죽이냐고. 아, 물론 헝가리판에서도 아마데가 볼프강을 죽이긴 하지만 그건 볼프강의 때가 되어서고 볼프강은 독일어판에서처럼 도망치다 붙들려 죽는 게 아니라 결국에는 자기 의사로 죽음마저 받아들이고 아마데는 그런 볼프강의 이마에 입맞추며 감정적 유대를 보여. 하지만 한국판에서 동업자이던 아마데가 볼프강을 살해하는 이유는 뭐지?

뭔가 할 말은 존나 많았는데 쓰다 지쳐서 생각이 안 난다. 걍 젤 하고 싶은 말만 하자면 모차르트!를 대작이라고 핥든 음악밖에 건질 거 없는 뮤지컬이라고 까든 각자 자윤데 주어는 확실히 하자고. 그 대작인지 망작인지가 독일어판임 헝가리판임 한국판임? 셋은 다른 작품임. 중심 플롯도 다르고 인물간의 관계도 다르고 가장 기본적으로 볼프강과 아마데의 관계가 다르고. 한국판에 대한 평가가 그대로 독일어판에도 적용될 수 있음? 한국판이 대작이면 독일어판도 대작이고 한국판이 망작이면 독일어판도 망작임?

모차르트! -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나요 판본 비교 뮤지컬 잡담

뮤덕 모드 들어간 김에 2 막에서 볼프강이 부르는 '어째서 나를 사랑해주지 않나요'도 독일어판과 한국판을 비교해봄. 먼저 한국판 공개 연습 장면이야. 실제 공연은 아니지만 아마 대강의 동선은 실제 공연과 일치할 거임.



그리고 이건 02 년 함부르크 공연. 왜 초연인 빈 버전을 올리지 않느냐면 빈 버전 밀캠에서는 카메라가 내내 볼프강 얼굴만 따라 다녀서 연출을 볼 수 없기 때문. 노래 앞부분은 잘렸지만 연출상의 중요한 포인트는 뒤에 나오니까.



두 버전 차이가 보이냐? 내가 모차르트! 초연 당시 제일 고나리를 하고 다닌 항목이 아마데의 역할 관련해서였음. 초연 직후 한국 리뷰들을 훑고 다니다 나는 이런 포스팅을 했지. http://heilt.egloos.com/4324591 리뷰들마다 관객들이 아마데의 정체를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아니라 어린 자아로 인식하고 있더라고. 근데 아마데는 모차르트!에서 엘리의 죽음만큼이나 중요한 캐릭터라서 아마데의 정체성이 바뀌면 아예 극이 바뀌어버려. 만약 엘리에서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수호 천사나 씨씨의 남성적 자아나 그런 걸로 해석이 된다고 해봐. 그럼 그게 우리가 아는 엘리겠음? 전혀 다른 작품이지.

그래서 나는 아마데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라고 조난 외치고 다님과 동시에 대체 어디서 아마데 = 모차르트의 어린 자아라는 해석이 나왔는지 궁금해했지. 관객들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럿이서 입을 모아 그런 말을 할 때는 다들 뭔가 본 게 있었을 거 아냐. 그치만 그거 하나  확인하겠다고 한국 갈 돈도 짬도 없어서 걍 궁금해하다 말았는데 나중에 하나 둘 씩 풀리는 한국판 영상 자료들을 보니까 그제야 씨발하고 깨달음이 오더라.

한국 버전의 볼프강은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서 아마데를 바라보고 다가가고 꼭 끌어안기까지 해. 그리고 아마데는 내내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볼프강이 하는대로 가만히 있고. 이러니 관객들이 아마데를 아 저건 어린 모차르트구나,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구나 하고 받아들이지. 그리고 아마데가 사랑받고 싶은 어린 자아기 때문에 한국판에서는 아마데가 아버지에게 종속이 되고 아버지가 최종 보스가 돼. 저 장면 직후 어린 아마데가 한국판에서도 볼프강을 공격하잖음. 아마 사전 지식 없이 한국판을 보는 관객이라면 그걸 모차르트 내면의 천재성이 인간 모차르트를 공격하는 거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됐다거나하는 식으로 받아들이겠지. 그러면 자연히 그 다음에 오는 볼프강은 멘붕 장면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에 상처 받아서'로 이해가 돼.

하지만 독일어판에서는 달라. 물론 독일어판에서도 볼프강이 어린 시절 얘길 하면서 아마데를 흘깃 보긴 해. 아마데가 자기 어릴 때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그치만 여기서 아마데는 어린 자아가 아니라 천재성이야. 볼프강이 아무리 애정 결핍으로 징징거려도 아마데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작곡에 열중해.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충격 따위야 인간 볼프강의 일일 뿐이야.

독일어판 무대에 커다란 두개골이 나와있는 거 보이지? 독일어판에서 아마데는 곧장 여기 걸터앉아서 작곡을 해. 일종의 아마데의 베이스 캠프이자 아마데와 엮여있는 상징이야. 이 해골은 천재의 불멸성을 상징해. 사람이 죽고 살은 썩어도 뼈는 남잖아? 인간 볼프강이 죽어도 걔의 천재성이 낳은 작품들은 남아.

하지만 앙상한 해골은 그 천재성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인가도 상징하지. 인간 볼프강이 원하는 빨갛고 도톰한 입술이나 부드러운 젖가슴은 그 해골한테 없어. 그건 볼프강이 원하는 게 아니야. 이 뮤지컬에서 천재성은 결코 긍정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야. 그건 인간 볼프강과 대립하는 비인간이야. 고귀하지만 무자비한 거.

그리고 볼프강이 징징거리고 나니까 아마데가 볼프강을 공격해. 왜? 아마데는 볼프강이 '그 따위 인간적인 감정'에 생을 낭비하는 걸 좌시할 수 없어. 아마데의 시각에서는 모차르트의 모든 것은 신이 내린 사명 음악에 바쳐져야 하니까. 볼프강이 아버지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도 아마데에게는 쓰잘데기 없는 낭비야. 그리고 이 때 앙상블은 모차르트의 진혼곡 중 진노의 날 선율을 빌려서 볼프강을 존나 쓸모없는 새끼라고 씹어대. 예전에 썼던 리뷰 대목을 가져와볼게.

'아마데가 볼프강의 목을 조를 때 배경 음악으로는 모차르트의 진혼곡 중 ‚진노의 날’이 흘러나옵니다. 이 곡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은 볼프강을 벌하는 아마데의 분노가 곧 신의 분노라는 것, 아마데가 신의 사자임을 상징합니다. 또 하나는 아마데가 볼프강의 죽음을 가져오리라는 복선의 의미지요.

그리고 볼프강은 발작합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아마데에게 공격당했기 때문에요. 그 전까지 볼프강과 아마데는 기싸움을 벌이고 갈등을 빚긴 했지만 아마데가 정면으로 볼프강을 공격하는 건 이 장면이 처음이예요. 볼프강은 자신의 분신인 아마데에게도 그 순간은 버림받았고, 신에게 단죄당했고, 인간적인 감정을 부정당했고, 덤으로 아버지에게도 버림받았고 해서 돌아버립니다.'

즉 독일어판과 한국판은 최종 보스도 다르고 볼프강이 멘붕에 빠지는 이유도 달라. 그리고 콘스탄체가 놀라서 달려오니까 아마데가 도망가잖아? 이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독일어판에서 아마데에게 그나마 대항할만한 존재는 콘스탄체야. 기본적으로 아마데는 볼프강의 인간적인 감정들을 싫어하고 부정하잖아? 그래서 볼프강이 아버지든 누이든 콘스탄체든 다른 인간들에게 깊은 감정을 갖는 걸 싫어해. 그런데 콘스탄체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볼프강을 천재가 아닌 인간남자로 사랑해주는 사람이야. 그래서 아마데에게는 콘스탄체가 제일 위험해. 아버지와 달리 콘스탄체에게는 볼프강의 천재성이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콘스탄체가 볼프강을 감정적으로 지배할 시 아마데는 볼프강에게 힘을 발휘할 수 없어.

그리고 실제로 콘스탄체는 극중에서 볼프강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끝까지 유대를 유지하던 사람이기 때문에(물론 그 유대도 결국에는 깨져) 아마데의 가장 위험한 적수이고 그래서 콘스탄체가 나타나니 아마데는 도망쳐. '아직은' 아마데가 콘스탄체를 이길 수 없거든. 콘스탄체가 아마데에게 패하는 건 더 뒤에 가서 모차르트가 마술 피리를 작곡할 때야.

그런데 한국판에서는 아버지가 최종 보스기 때문에 아마데와 콘스탄체 사이의 알력은 희미해지거나 아예 사라져. 내가 한국어판을 풀버전을 본 게 아니라서 한국어판에서는 이 둘의 관계가 정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어. 확실한 건 한국어판에서는 독일어판과 인물들의 내적 관계가 완전히 다르다는 거지.

한국어판이 독자 노선을 걷는 것도 괜찮아. 패기있게 관철할 자신만 있으면 아마데의 정체성을 바꿔도 돼. 근데 시발, 한국판의 문제는 그걸 하다 말아! 아마데의 정체가 바뀌었으면 거기에 맞춰서 인물간의 관계도 바꿔야 될 거 아님? 이를테면 콘스탄체가 나타나니까 아마데가 사라지는 게 독일어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한국어판에서는 없잖아.

콜로레도의 역할도 그래. 아마데가 최종 보스고 '어떻게 처음에는 하나였던 아마데와 볼프강이 서서히 분열하고 갈등하다 아마데가 볼프강을 잡아먹게 되는가'로 줄거리 한줄 요약이 되는 독일어판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이 플롯을 위해 존재해. 콜로레도에게서 독립할 때는 볼프강과 아마데 둘 다 그걸 원해. 아마데도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콜로레도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알아서 볼프강을 지지해. 하지만 그렇게 해서 뛰쳐나온 후 둘은 이해관계가 달라져서 대립하지. 아마데는 예술에 전념하고자 하고 볼프강은 날라리가 되고 싶어. 그게 아까 올렸던 그림자 송.

하지만 아마데가 볼프강의 어린 자아라면 콜로레도와 대거리할 때 아마데의 역할이 불분명해져. 독일어판의 아마데는 콜로레도에게 볼프강과 함께 맞설 이유가 있어. 근데 한국판에서는?

설정이 달라졌기 때문에 원판에서는 딱딱 아귀가 맞아있던 부분들이 한국판에서는 뒤틀리고 "왜?"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부분들이 생겨. 저 꼬맹이는 왜 자꾸 볼프강을 따라다니는 건데. 왜 저 꼬맹이가 볼프강을 찔러죽이는 건데. 아버지에게 사랑 못 받아서?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그렇다면 한국 볼프강은 아버지에게서 독립하려다 실패하고 죽는 파파보이야? 그럼 거기서 콜로레도가 하는 역할은 뭐지? 이런 의문들이 설명되지 않으면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만 할 뿐 산만하고 유기성이 없다"는 평이 나올 수밖에 없어. 작품을 관통해야 하는 중심 플롯이 모든 장면을 지배하지 못해서 낭비되는 장면들이 생겨나니까.

아마도 한국 볼프강 역 배우들은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나요'를 일종의 클라이막스로 여기고 특별히 공들여 불렀을 거야. 아버지가 최종 보스고 아버지와 모차르트의 갈등이 중심에 온다면 당연히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장면이 클라이막스가 되겠지. 내가 한국판 들을 때 유난히 귀에 뜨이는 노래도 그거였어. 그 부분에서는 한국 볼프강들의 해석이 독일어권 쪽 볼프강들과 확 달라지기도 했고. 팬들도 유난히 그 노래랑 이어지는 멘붕씬을 칭송하더라?

배우들이 공들여 연기했으니까 그 장면 퀄리티는 좋았을 거야. 하지만 부분이 좋아도 전체적 맥락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면 전체적으로 성공한 프로덕션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모차르트!는 쿤사마가 엘리 후에 쓴 거야. 당연히 엘리 때보다 내공이 더 쌓였고 작품도 더 세련되게 뽑혔어. 이를테면 엘리에서는 한 사람의 생애를 한 작품 속에 담기 위해 루케니라는 변사가 필요했어. 루케니가 적당히 장면을 끊고 정리해주고 때로는 관객에게 정보도 전달하고 관객이 어떤 시각으로 극을 보아야 하는지까지 때로는 지나치게 친절할 정도로 안내해. 반면 모차르트!에는 그런 정리용 캐릭터가 없어. 따로 정리해주지 않아도 각 장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중심 플롯에 봉사해야 돼.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엘리보다 더 연출하기 까다로워.

근데 반전이 뭐냐면 한국판 연출이 정말로 진지하게 아마데를 모차르트의 어린 자아로 밀고나가려고 했던 것도 아닌 거 같아. 왜냐면 당시 언론 리뷰에는 아마데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라고 오리지널 버전대로 설명이 되어있었거든. 그거 EMK 에서 보도자료 뿌린 거 받아적은 거일테니 EMK 도 원래는 원작대로 아마데를 천재성으로 설정하고 작품을 올리려고 했던 거 같아. 근데 아마데가 천재성인데 왜 저런 장면 연출이 나왔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됨. 설명할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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